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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획과 영감 Feb 23. 2022

모든 인연은 아르바이트에서 시작됐다

[뮤직비디오 PD가 된 과정 1] 현장 연출부는 누구인가? 



#1. 모든 인연은 아르바이트에서 시작됐다


촬영 현장 스태프 일을 구해본 사람이라면 '연출부 알바'라는 이상한 용어가 있다.

이는 자칫 연출부 업무가 당일 아르바이트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용어이다.


연출부는 곧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말인가?

연출부 중에서도 아르바이트로 채용된 사람이라는 말인가?

(후자에 더 가깝지만, '현장 연출부'라 고쳐 쓰겠다)


나는 이 포지션에서 일을 시작하였고, 이후 우연하고도 귀중한 기회를 잡아 대형 기획사 MV PD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하여 1) 해당 직책이 맡는 업무를 비롯해, 2) MV와 영화 현장의 전반적인 연출부 구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려 한다.



현장 연출부, 그들은 누구인가? 무슨 일을 하게 될까.




<1> 영화와 MV, 연출부 편성은 어떻게?




'영화 연출부'는 감독, 조감독과 긴밀히 협력하며 인물, 미술 등 전체 콘셉을 결정짓는 세부 항목들을 점검하는 파트이다.


보다 세부적으로 나열하자면 조감독, 인물 담당(세컨), 미술 담당, VFX담당, 막내로 포지셔닝이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제작되는 콘텐츠의 성격과 예산에 따라 연출팀 편성이 훨씬 간소화되기도 한다. 독립 장편영화에 참여했던 당시, 내 대외적 직책은 조감독이었으나 동시에 인물과 미술, 막내, 가끔은 제작팀의 롤을 맡기도 했다.


동명이인 프로젝트 시즌 3 촬영 중!


한편,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는 '프로덕션'(보통 덕션이라 줄여 부른다)이라는 개념이 동반된다.


덕션 중에서도 클라이언트(아티스트) 의뢰가 꾸준하고 조직이 잘 갖춰진 곳은 감독, 피디, 연출팀 1~2명, 제작팀 1~2명 정도의 기본 구성원이 갖춰져 있다. (물론 내가 경험한 프로덕션은 한 곳뿐인지라, 나의 주관적 생각이 업계 통상으로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MV 스탭진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더욱 간소화되는 것이 보통이며, 연출팀과 제작팀을 합친 '연제팀'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2> 현장 연출부는 언제 필요할까?




'현장 연출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보자면 어떻게 말할까?

'프리 프로덕션'(촬영 전, 촬영에 관한 모든 준비를 진행하는 기간)에 참여하지 않은 인력이다.


말 그대로, 현장 당일에만 출근하여 부족한 일손을 지원하는 인력이다. 하여 영화 엔딩 크레딧을 살펴보면 그들은 '연출지원' 혹은 (현장 제작팀의 경우) '제작지원'으로 분류되어 기재된다. (영화 볼 때 크레딧도 한 번 살펴보세요!)


그들은 흔히 '떼씬'이라 불리는 '몹씬'(mob scene) 촬영이나 위험한 도로 씬 등 드넓은 장소에서 촬영 시 인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고용된다. 필요한 세팅을 보조하거나, 차량으로부터 도로를 통제하는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일을 한다.


영화 1917


그러나 MV 촬영에 있어서는 '현장연출부'의 개념이 약간 다르다.


프로덕션 팀을 애초에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촬영 당일 일손이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다.


즉, (몹씬과 같은 복잡한 연출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경우에 현장 연출부를 무조건적으로 고용한다. 이때 현장 연출부는 음악을 끄고 트는 일부터, 아티스트에게 물이나 선풍기, 손난로 등을 챙겨주는 일, 급하게 미술소품이나 (스프링쿨러, 헤이저, 포그머신 등의)장비를 구하는 일도시락 업체 예약, 와이어 당기는 일 등 소위 잡일이란 잡일은 모두 도맡게 된다.


MV는 아티스트의 춤과 퍼포먼스에 100% 집중되는 콘텐츠이다. 그러니 촬영이 이루어지는 공간(세트)만 잘 조성해놓으면 촬영 자체는 간단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아주 큰 오산이다. 상업 영화에 비해선 세팅이 간단해 보일지 모르나, 직접 경험해본다면 이후 '뮤직비디오 현장 연출부'라는 말에 몸서리를 칠 정도로 업무의 육체적 강도가 높다. 일정상 급하게 준비되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당일에서야 급급하게 준비하는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단기 노동자를 배려하는 인간적 대우가 이루어질 수 없는 예민하고 긴박한 환경인 것이다.





<3> 나의 첫 MV 현장 연출부



졸업 후, 시나리오를 쓰면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여러 촬영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위에서 언급한 독립 장편영화의 조감독으로 일했을 때엔 특히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감독님께 양해를 구하고 2회차 뮤직비디오 현장 연출부에 지원을 했다. '필름메이커스'라는 구직 사이트에서 이틀 후 진행될 MV의 현장 연출부를 모집했고, 나는 이름과 나이, 간단한 경력과 포부 몇 줄을 정성스럽게 써서 문자로 지원을 하였다.


잠시 후에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고 촬영 당일 새벽 5시까지 택시를 타고 경기도 어디로 오라는 1분짜리 심플한 통화를 마쳤다. 그게 곧 계약이었다. 참으로 심플하고 말도 안 되는 고용방식이다. [하루 25만 원, 2회 세트 촬영, 숙박...]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 나 빼고 이미 서로 알고 있는 현장의 분위기, 그 속에서 외로이 헤쳐나가야 할 시선,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듣진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 촬영지로 이동하는 택시에서 느낀 불안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이 시리즈 [뮤직비디오 PD가 된 과정]을 연재하는 소기의 목적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지금의 나', 그리고 무슨 연유에 있어서든 (나와 같이) 오랫동안 스러져있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데에 있다. 지나간 짧은 도전적 경험들 속에서, 오늘날의 긴 방황을 끝내줄 아이디어를 찾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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