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패트병에 담긴 까만 콩과 노란 콩은 창고 문을 열 때마다 골치거리다. 친구들은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인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선물은 그들에게 일거리일 뿐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눠 먹을 수도 없고 내가 처리해야 하는 숙제이다. 왜 이렇게 많은 콩들이 있냐고? 위암 수술을 받은 남편을 위한 여기 저기의 정성의 산물이다. 그런데 창고 문을 열 때마다 째려보게 된다. 비릿하다고 했다. 건강식이라는 것 자체가 비위 상한다고 했다. 죽만 먹던 시절이 떠올라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기 싫은 나의 성격까지 합쳐져 콩들은 주인의 명령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목욕을 하다 보니 수챗구멍에 널부러진 남편의 머리카락이 심상치 않다. 누군가의 비리를 알게 된 것처럼 충격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휑해지는 머리의 관리가 시급하다. 까만콩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았겠지만 천덕꾸러기가 그 쓰임을 할 때가 온 것이다.
친절한 블로거의 글을 검색했다. 그들은 뭐든 쉽다는 말로 시작한다.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에게 설명해 주듯 나긋나긋하고 상세한 설명이 있다. 검은콩은 겉은 검지만 속살은 푸르다. 속까지 검은 것보다는 보기 좋다. 10월경 서리가 내린 후에 수확해서 서리태라고 하니 이 콩들은 작년에 수확한 것들임에 틀림없다. 1년 만에 빛을 보는 것이다.
서리태 한 컵을 깨끗이 씻었다. 너무 씻으면 좋은 성분이 날아가겠지만 1년 동안의 묵은 때를 벗겨내듯이 박박 씻어주었다. 하루동안 냉장고에서 콩을 불렸다. 다음날 아침 작은 콩이 2~3배로 커져 있었다. 버리게 될까봐 조금만 했는데 그 양에 긴장이 된다. 모두 내 몫이 될까봐. 또 다시 블로그를 열고 다음 스텝을 밟는다. 냄비에 불린 콩을 넣고 센불에서 끓이며 굵은 거품을 걷어내 주다 중간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 중간불로 하여 20여분 삶아주라고 했다. 더 삶으면 메주 냄새가 날지 모르니 시간을 엄수하라고 했다. 이것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 휴대폰 타이머를 맞췄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불을 꺼버렸다. 알람은 맞췄지만 20분간 내 눈은 냄비 속 콩을 응시하고 있었다. 먹어보라고 했다.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 한 알을 먹어본다. 잘 삶아져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한 알을 더 먹어본다. 이제는 불을 끄고 뚜껑을 덮고 콩이 식기를 기다린다. 탱탱 불은 콩들은 귀엽던 까만콩의 흔적을 지웠다. 믹서기에 곱게 갈아주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소금을 넣지 말라고 했지만 맛을 위해서는 간간함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두 번 정도 갈아주라고 했지만 세 번을 갈아준다. 이쯤되면 블로그 화면을 끄고 나의 레시피를 추가해도 되는 거다. 다시 한번 검은 소용돌이를 확인한다. 건더기의 이물감은 절대 허용하기 싫다.
드디어 맛 볼 순간이다. 첫 한 모금에 걸쭉한 고소함이 느껴진다. 두 번 째 모금에 풍성한 머리카락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음료가 아니라 죽처럼 만들어져 식사가 될 판이다. 식료품 마트의 시식 코너에서 한 끼 식사를 마치듯 맛보면서 배를 채웠다. 퇴근한 남편에게 검은 죽을 쑥 내밀었다. "내가 너를 선택한 이유는 풍성한 머리카락이었어" 군말 말고 먹으라는 것인줄 알겠지. 비린내가 나지 않은 것일까. 그릇 바닥이 보일 때까지 수저질을 한다. 어른이나 아이나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이쁘다는 생각뿐이다.
콩을 선물해준 사람들이 약간 원망스러웠는데 역시 필요는 쓰임을 만든다. 까만 미역같은 머리결을 상상하니 창고 안 애물 단지는 소중한 꿀 단지가 되었다.
그 옆 노란콩이 묻는다. "나는 어떻게 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