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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울렁거려

오늘 생각 13

by 은진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안전하게 품고 있다가 낳는 것만이 지상최대의 과제로 느껴졌다.

낳아만 놓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던가.

임신기간이 유난했던지라 혹여나 출산 중에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는 늘 불안했어도, 육아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입덧도 없다고 입방정을 떨었던 날, 놀리듯이 지독한 입덧이 시작됐다. 제대로 먹지 못한 13주 차까지 살을 시원하게 빼고 시작하니 막달 몸무게가 고작 56kg이었다. 몸이 버티기 힘들 만도 했지 뭔가.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무통주사를 맞고도 무통천국을 경험하지 못한 억울했던 기억, 쉴 새 없는 통증에 진통제를 눌러댄 탓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위험할 뻔했던 아찔한 기억은 남았지만 아이도 산모도 건강했으니 순산이다.


드디어 낳았으니 이제 되었나, 부푼 마음으로 시작한 조리원 생활은 눈물과 불면과 기계음의 대환장파티였다. 이 녀석이 젖을 물지 않았다.

배는 고픈데 모유가 잘 나오지 않으니 앙칼지게도 울어대며 입만 대도 잘 나오는 분유를 내놓으라고 했다. 아이가 찾질 않으니 가슴은 돌덩이처럼 굳어 아팠고, 모두가 곤히 자는 새벽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유축기를 돌려야만 했다. 진정 푹 자고 싶었다.


설상가상 유축기로는 모이는 양이 너무 적었다.

매일 모유수유를 시도했으나 나중엔 조리원 선생님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미안하다는 말로 포기를 선언하셨다. 퇴소할 때 분유 한 통 더 주시더라...




더 놀라운 일은 조리원 퇴소 이후 집에서 벌어졌다.

Day1부터 수유 전쟁이다.

조리원에서의 사정을 들은 방문 조리사님이 대수롭지 않게 젖을 한 번 물려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기는 엄마를 뻥쟁이로 만들며 보란 듯이 허겁지겁 모유를 잘도 먹었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도대체 뭐 때문이란 말인가?


2주 내내 분유를 먹이며 유축을 했으니 많지 않던 젖양이 더 줄어있었다. 아기는 젖을 더 내놓으라며 짜증을 냈고, 잘 먹던 분유는 밀어내기 바빴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니?"


싫다는 분유를 억지로 섞어 먹여가며 무려 1년 반 동안 모유수유를 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1년 반의 모유 대장정을 이렇게 간단히 요약하자니 허무하기까지 하다. 집에 다녀간 모유수유 전문가님만 무려 세 분이었다.


낳기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나는 먹이는 것과 재우는 것에서부터 애를 먹고 있었다. 이론과 실제는 너무 달랐다.

진짜가 시작되었다.


일희일비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았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세상 모든 부모가 알리라 믿는다.

동시에, 부모가 된 이상 아이로 인해 마음 졸이는 일이 일상이라는 것에도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리라 믿는다.


육아 동지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것도 걱정 저것도 걱정,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우리 이 걱정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아마 우리가 늙어 눈 감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할 것 같은데요?"

농담인 듯 아닌 듯 이야기한다.




"엄마, 나 울렁거려."

가슴이 철렁 땅이 훅 꺼지는 소리다.

어제도 잠시 그러다 괜찮아지는 것 같더니, 영 속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말에 걱정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아이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가 힘든 상황이 싫어 나는 조바심이다. 더 심해지면 어쩌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뭘 먹었더라, 뭘 먹였더라.

그걸 왜 먹였을까, 외식은 왜 해가지고!

마음속이 어찌나 시끄럽던지.


작은 생채기에도 여전히 나는 동요한다.

아무리 겪어도 초연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은 병원에 다녀와 밥도 조금 먹고 잘 쉬고 있으니 이렇게 여유도 부 수 있다.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을 너는 알까, 워낙 마른 아이라 못 먹는 상황에 더 애가 탄다.


이대로 쭉 저녁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를.

내일은 쌩쌩해져서 가뿐하게 등교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아이가 아플 때면 떠오르는 (굉장히 함축적이고도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그 말을 외쳐본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좀 괜찮아? 그럼 공부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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