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반지

오늘 생각 1

by 은진

수능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겨우 중학생 아이를 키우는 내 마음이 이렇게나 울렁울렁할진대, 하물며 고3수험생들, 그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직 멀었다고 안심하기엔 요즘 들어 부쩍 시간이 참 빠르게도 흐른다는 것을 눈치채 버린 터라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오래전 그때의 부모님 생각이 난다.



수능을 앞둔 어느 날 아빠가 묵주반지를 사 오셨다. 예쁜 묵주반지를 축성까지 받아서 건네주실 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지금에야 비로소 조금은 알 것 같다.

두 분 모두 시험을 잘 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다소 예민하고 평소에도 위통을 달고 살던 딸에게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부담이 될지 아셨던 것 같다. 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는 흉내 낼 수 없는 지혜와 성품을 두 분은 지니고 계셨다.


시험 날 아침 집을 나서는 내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너무 짠해 눈물이 났다고 하셨다. 꾹 참고 웃으며 웅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은 내가 눈물이 찔끔 난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결코 랐을 감정이.


묵주반지를 왼손 검지에 끼고는 아빠와 함께 담담히 시험장으로 향했다. 예민한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도가 담긴 묵주반지 덕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마음이 너무 편했나보다. 시험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결과를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제하고 보면, 그날은 마치 축제일 같았다. 시험을 마치고 부모님을 만나 조잘대며 돌아와, 엄마가 끓여주신 손만둣국을 맛있게 먹고 채점을 한다고 TV 앞에 앉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슬픈 이야기인지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나조차도 헷갈리는 대목이다.



그날의 기억을 모두 담고 있던 소중한 묵주반지를 잃어버렸다. 거의 매일 끼고 다녔던 반지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그냥 허무하게 내 손가락에서 사라져 버렸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페이퍼타월로 물기를 꼼꼼히 닦았을 뿐인데 아마도 페이퍼타월과 함께 화장실 큰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아빠 미안해요.


하지만 휴지통을 뒤적일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매년 수능시즌이 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몸이 반응하는 것처럼 묵주반지와 엄마의 눈물과 시험을 망쳤다고 오열하는 나를 다그치지 않고 위로해 주시던 아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욕심 많은 엄마다. 그래서 가끔은 내 욕심을 몸 밖으로 내놓아,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도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다짐한다.

내가 건네는 묵주반지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내 욕심을 잘 다스려야지.

아빠의 기도가 담긴 반지를 부탁드리면 더 좋겠다.

그러면 참 행복해 하시겠지. 아이도 분명 그러하겠지.



수능을 치르는 모든 가정을 응원며,

결과를 떠나 값진 경험이 되기를,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이 되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