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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목살이 싫다고 하셨어

오늘 생각 17

by 은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불러보는,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진짜 명언이다, 명언...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쟤는 맨날 저렇게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냐고 투덜거릴 정도로 나는 먹는 걸 참 좋아했다.


깜깜한 밤에도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냅다 뛰었다. 식탐이 두려움을 이겨버리는 거다. 지금도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길 꺼려하는지라 최근 몇 년 사이 발달한 배달 시스템에 물개 박수가 나온다. 나의 혈관 건강을 생각하면 잘된 일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어제던가 오늘이던가, 어떤 아기가 맛난 밥전 이유식을 기대했다가 일반 이유식을 보고 통곡을 하는 영상을 봤다. 깊은 공감을 느꼈다.


김치볶음밥을 기다렸건만 김치 비빔밥을(고추장을 넣고 따뜻하게 비비는) 해다 주신 엄마께 짜증을 내던 철없는 모습도 떠올랐다. 사실 정말 맛있었지만 끝까지 맛있다고 하지 않고 툴툴거리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먹는 걸 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는 자발적 양보라는 것을 한다.




시작은 가자미였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백화점에서 장 보는 일이 잦았는데, 갈 때마다 예쁘게 진열된 가자미 한 마리를 사 와서 구우면 밥 한 그릇을 뚝딱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았다. 두 마리 구우면 되지 싶겠지만 가자미는 부피가 커서 두 마리를 함께 굽기는 좀 번거로웠다. 은근 가격도 비쌀 때였다.

지금은 가시를 완벽하게 제거한 가자미 필렛을 애용한다. 신세계다 신세계.

어쨌든 가자미 한 마리를 오븐에 구워 살을 쏙쏙 발라 밥 위에 얹어주면서 생각했다.

"나도 가자미 좋아하는데..."

제법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후로는 뭐 엄마들이 레 그러하듯, 아이가 잘 먹는 것이 있으면 아이 입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다.

(마른 아이어서 거 그렇기도 하다.)

부족하지 않게 준비하는 게 베스트지만, 가끔 의도치 않게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이 생긴다.

오늘처럼 말이다.


토요일은 원래 삼겹살데이다.

집에서 돼지고기를 한 번 굽고 나면 온 집안에 가득 차는 냄새나 연기는 둘째 치고라도 바닥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다들 알 것이다. 그게 싫어 돼지고기를 자주 구워주지 못하다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깃집이 새로 오픈한 것을 발견하고는 매주 성당 갔다가 돌아오는 길엔 그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곤 했다.


남편과 나는 매주 먹는 돼지가 질린 지 오래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먹는 날이 더 많았다. 뭘, 먹으면 또 잘 들어긴 했다.

오늘은 토요일, 요즘 독감이 기승이지 않은가? 시험을 앞두고 괜히 외식을 했다가 탈이나 나지 않을까 싶어 귀찮음을 무릅쓰고 오늘은 집에서 돼지고기를 먹어보기로 한다.


누군가는 준비를 해야 하니, 내가 다른 날 미사에 참여하기로 하고 대신 오는 길에 정육점에 들러 목살을 사 오라고 일렀다.


몸이 기억하는지, 지난주에도 한 주 거르고 다른 메뉴를 먹었더니 오랜만에 돼지를 뜩 기대하게 되었다. 한돈이라 더 맛있겠지!


청국장도 끓이고, 함께 구울 채소와 콩나물 무침도 준비했다. 새 밥이 지어지는 냄새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드디어 도착한 남자 둘.

남편이 건네는 고기를 받아 드는데, 응?

이게 다라고?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

너무너무 예쁜 목살은 500g이 채 되지 않았다.

"설마 한 팩 사 왔어?"

"응, 둘이 먹기 충분할 거라고 하시던데?"

"오빠, 우리가 매주 삼겹살을 사 먹은 게 2년이야. 항상 얼마큼 먹었는지 몰라? 그리고 우린 셋이잖아."

"아, 나 거의 안 먹을 거야."


이게 무슨 말이람, 안 먹는다니...

오늘따라 돼지고기가 매우 기다려졌던지라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르려는 것을 꾹 참고 2차로 숯불구이 치킨을 먹어야겠다고 농담을 했다.(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고기 양은 생각대로 보잘것없이 적었다.

국산 챔기름을 듬뿍 넣어 준비한 소금장이 아까울 정도로. 식당이라면 추가라도 할 텐데!

고기는 또 왜 그리 맛있는지 맛있어서 화가 나긴 처음이었다.

결국 셋다 눈치를 보며 식사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다 웃음이 터진다.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지 않은가?

목살이 뭐라고.


얇게 썬 목살을 다섯 점 정도 집어 먹었다.

(이 집 고기 좋더라. 앞으로 단골 해야지!)

구운 애호박도 집어 먹고, 콩나물도 집어 먹고, 청국장이 기가 막혀 밥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아이가 내 접시에 살포시 고기를 쌓고 있다.


"왜? 엄마 못 먹는 걸까 봐?"

"응, 엄마도 좀 드셔."

감동이다. 이 자식!


"괜찮아, 엄마 아까부터 속이 울렁거려서 어차피 기름진 거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아니야, 사실 울렁거리긴 하지만 잘 들어갈 것 같아.)


이렇게 또 시트콤을 한 편 찍었다.

안 그래도 쓸 거리가 없어 막막했는데 이렇게 소스를 줘서 고맙네 하며 웃었다.


고기 한 팩으로 온 집안이 스케이트장이다.

억울하게시리.



남편이 말했다.

오, 여기 고기 맛있네.


찌릿...

어머님은 목살이 싫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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