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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사자 Aug 19. 2021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1-day : Samos To Sarria

사모스(Samos)에서 사리아(Sarria)까지 4시간을 걸었다. 오전 8:30에 걷기 시작하여 12:30까지 걸었고, 6킬로가량의 배낭을 등에 메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은 풍경에 매료되어 힘든 줄도 몰랐다. 어제 만난 헝가리 아줌마가 일러준 대로 한 시간 걷고 물 마시고 두 시간 걷고 양말을 갈아 신었다. 하루 만에 오우의 발에는 물집의 신호가 보이고 내 발은 언제인지 모르게 생겼다가 사라진 물집의 흔적이 생겼다.



첫날이라 사리아에 도착했지만 알베르게를 찾는 방법을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온 두 어르신이 친절하게 알려 주시고 자신들은 내일 아침 출발을 좀 더 용이하게 하겠다고 마을 끝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가셨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아우성을 쳤다. 근육의 통증보다 배고픔이 먼저라서 맥주와 치킨을 먹었다. 이제 시에스타를 즐겨볼까. 그런데 내 앞에 할리데이비슨을 탈 것 같은 할아버지가 옷을 훌러덩 벗고 다니셨다. 하여튼 할아버지! 부엔 카미노!!


시리아 알베르게 마당에서 낮잠


마당 잔디 위에 비치의자가 있어 낮잠을 잘 요량으로 누웠다. 눈을 감고 있으니 참 좋았다. 내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에서 매번 공짜로 주는 올리브는 정말 감동이라 이 무렵에 올리브 나무가 가로수 마냥 스페인 어디에서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이게 혹시 올리브나무는 아닐까 하며 주변 나무까지 두리번거리다가 옆 비치의자에 앉아 있는 남정네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뭔가 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 여운.



“어디서 왔니?”

“이탈리아에서”

그럼  무슨 나무인  알아? 혹시 올리브 나무야?”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무를 만지작거린다. 난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는 내 옆에 앉아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인생 통틀어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건 올리브나무가 아니야. 여긴 올리브가 잘 자라는 곳이 아니라 저 중부 쪽 지방이 올리브로 유명해. 날씨가 더 뜨거우니까. 이건... 비슷한 건데... 이름이... 영어로 뭐더라.”


그때부터 휴대폰으로 이름을 찾기 시작한다. 쉽게 찾아지지가 않은지 시간이 걸렸다. 쉬고 있는 사람을 귀찮게 한 건 아닌가 싶어 후회하고 있는데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찾았나 보다. 그는 알아듣기 힘든 단어를 말했다. 내가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산티아고 길을 가다가 혹시나 올리브 나무를 발견하면 말해줄래? 실제로 올리브나무를 보고 싶어.”

“그래. 그럴게.”



낮잠을 끝낸 후 마켓에서 하몽/상추/마늘/체리/물을 사서 알베르게 2층에서 조리를 하는데, 창밖에는 닭이 울면서 서로를 쫓고 그 옆 잔디밭에는 말이 서 있다. 이 비현실적인 모습이라니.



삼겹살 & 샐러드 & 로제와인

부엌에서는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한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와인이나 맥주 없이 식사를 하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가 알베르게를 걸으면서 즐기고 싶어 가져온 로제 와인이 있는데 마셔볼래?”


나는 감동을 쉽게 받는 사람이다. 난 가방 무게 상관없이 좋아하는 길을 걸으면서 마시겠다고 로제 와인을 챙겨 오는 이 낭만과 여유가 좋았다.


“괜찮다면 한 잔만 부탁할게.”








순례자마다 가방의 무게는 제각각이지만 내 경우는 노트북과 DSLR 카메라를 포함, 가방 무게까지 6킬로가량의 무게라 대단히 성공적인 짐 싸기였다. 중간에 일을 처리해야 해서 노트북이 필요했고 첫 유럽여행이라 사진을 꼭 찍고 싶어서 무거운 카메라를 포기할 수 없었다. 6킬로그램 수준의 배낭의 의미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매일 빨래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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