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사자 Aug 19. 2021

내 지갑 내놔

마드리드 할렘가에서의 추격전

내 지갑을 노린 소매치기들은 두 명, 겉으로 보기에는 스무 살도 안 된 앳된 여자아이들이었다. 오우와 나는 수다를 떠느라 그 아이들이 내 가방 속의 지갑을 뺀 것도 몰랐다. 다만 허공에 내 지갑의 ‘긴—-끈’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반사적으로 내 지갑을 든 여자아이의 팔뚝을 잡았다. 난 손이 큰 편이었고 그 여자아이의 팔뚝은 가늘었다. 내가 본인의 팔뚝을 잡자 또 다른 여자아이에게 내 지갑을 넘겼다. 그때도 지갑은 보지 못했다. 다시 한번 내 지갑의 '긴—-끈’이 하늘로 선을 그리며 이동하는 것이 보일 뿐.


마드리드 골목


난 다시 그 두 번째 여자아이를 쫓았다. 그 사이 오우는 첫 번째 여자아이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 의미는 내가 쫓아가고 있는 두 번째 아이가 다시 지갑을 건네줄 파트너가 없다는 말. 지갑을 들고 도망가는 아이가 건널목을 건너고 그 새로 시작된 거리의 야외테이블에는 관광객들이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내 지갑 내놔!!"


우렁 찬 내 목소리에 모두 쳐다보았고, 테이블 옆을 지나던 유아차를 끌고 있던 두 명의 아주머니들이 다급하게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나를 보았다. 결국, 두 대의 유아차가 내 앞을 달리던 그 여자아이의 길을 막게 된 상황.


내가 소매치기를 잡았나 싶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 아이에게 ‘지갑 돌려줘'라고 말했더니 이 아이가 빈 양손을 보이며 웃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때 뒤에서 오우가 소리쳤다.


“언니, 지갑을 바닥에 던졌어!”


바닥을 보니  끈이 달린  지갑이 있다. 지갑을 주워 들고 보니 어느새  아이가 없다.  얼굴이 상기되어  옆으로 왔다. 한숨을 돌리고 는데 우리 앞에는 아까  유아차 아주머니들이  있다.


“걔들은 우리 스페인 사람이 아니야. 루마니아에서 온 애들이야.”

"스페인 사람이라도 해도 괜찮아요. 이 일 때문에 스페인이 싫어지지는 않아요.”


스페인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대답해주고 웃었더니


“진짜 아니라니까... 개들은 루마니아인이야. 그리고 그 지갑 크로스로 메.”

“알겠어요. 크로스로 멜게요.”

“지금 당장! 우리 앞에서 메!”


나는 고분고분 그녀들의 말을 들었다.  


“그래. 잘했어.”


유아차 아주머니들은 그제야 갈 길을 갔다. 우리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마드리드의 할렘가에 있는 플라밍고 극장을 향했다.


소매치기로부터 지갑을 지켜낸 후 관람한 공연


작가의 이전글 진짜로 가게 될 줄 몰랐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