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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Oct 19. 2024

나만 아는 노래

Special Essay, writer. 김사월 씀

<THE WORK OF WRITING>

· 웹매거진 <쓰는 일>은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씀을 경험하는 여성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지럽고 진득진득한 우물에서 언어를 길러오는 일은 꽤 고독하고 외로운 일 같아요. 그렇지만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것, 기울어진 감정을 낚아채는 것, 계속해서 기억을 재생하고 되감았던 장면을 통해 쓰고 만드는 것, 그 끝에 모두 사랑이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결국엔 외롭지 않길, 지나치지 못한 장면과 시간으로 위로받길 빌면서요. 




그 애는 작년 가을에, 나는 올해 3월에 정규 앨범을 냈었다. 앨범 준비를 하며 각자의 우물을 파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수험생 동지처럼 서로를 응원했다. 어떤 상황을 지나고 있을지 왠지 알 것 같아서 오래 작업한 앨범을 세상에 내놓고 느끼는 공허감 같은 것들을 서로에겐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치 비슷한 시기에 결혼이나 출산을 한 여자들 같았다. “앨범이 나오고 몇 개월 후엔 기분이 이래…” 하면서 그녀는 말했었고 나도 어떨 때에는 마음이 그러하다며 찡찡거렸다. 오래된 곳간을 털어버린 것처럼 한동안 새 노래를 만들 힘도 자신도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노래 같은 건 영원히 만들 수 없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같은 기분이 들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다시 자신에게 노래가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런 흐름이 올까? 그렇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며 부럽게 축하했다



지금까지는 앨범 발매를 할 때 이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약간 남겨두었다. 이번에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안전장치 없이 나름의 전속력으로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나의 몸부림이 이 세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할 말이 없어졌다. 할 말이 없으면 안 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 하지만 계속 곡을 안 쓰고 있으면 ‘내가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긴 한가?’ 싶은 것이다. 점점 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심스러워지고 신선한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예전에 이미 했던 이야기는 또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지고, 밝은 점과 어두운 부분을 모두 공감할 수 있기에 오히려 어떤 말도 선택하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언어를 길러오던 이곳에서 굳이 더 뭔가를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든다. 떨어진 열매를 찾아다니거나 뭔가 심어서 가꾸고 수확하는 것도 창작의 방법일 테지만 그건 이미 채집과 농사의 대가들이 있어서 그 시장에 내가 들어가서 뭐 하나… 구식이지만 내가 해 오던 방식을 유지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이런 식으로 도구와 재료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면 한창 많이 뭔가를 만들던 시절을 지나 멈춰 서서 방법론에 빠져있는 모습은 참 얼마나 한가한 모습인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기분이 개운하기도 하다. 정말로 노래 같은 건 영원히 만들 수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버스 안에서 아이폰 메모장 속에 문장이나 단어를 끄적거린다. 이것은 어떤 파편이나 조각일 뿐, 이것들을 이어 붙인다고 가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진짜 글을 쓰기 위해 예열하고 연습하는 것에 가깝다. 마음의 체력을 길러놓는다면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 혹은 갑작스러운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그때를 순발력 있게 포획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정도로 지금 느낌을 다 써버리는 걸 택한다. 좀 과하게, 이것까지 써도 되나 싶은 부분까지 흥청망청 써놓은 그 텍스트에서 가사를 추출한다. 너무 과하다 싶은 부분은 버리지만 왜 이렇게 과해졌는지는 남겨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가사에서는 감정이 치우쳐져 있는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애초에 내가 가사를 짓는 방식이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진 감정을 캡처하는 식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울어진 부분에 나의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그나마 잘 잡을 수 있는 방식과 장소에 그물을 펼쳐야 뭐라도 잡기 때문이다.


사냥을 쉬는 척하지만 몰래 노래를 만들고 있다. 이 망곡들을 세상에 들려줄 생각은 없다. 또 모르지, 언젠가 새로운 조리법을 발견하게 되면 마냥 버려진 것 같은 이 시절의 노래들을 다르게 요리해서 내놓게 될지도. 


그러다 어느 순간을 만난다

메모장에 써둔 글귀의 첫 줄을 읽다가 훅, 내가 예열이 되었다는 것을 너무나 반갑고 빌어먹게도 느끼고 기타를 재빨리 안는다. 어지럽고 진득진득하게 펼쳐져 있는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잡아채기. 그걸 멜로디로 내뱉으면 이제 노래가 될 테지. 그 직전의 간질간질함. 이 짓의 쾌감을 잊지 못해서 결국 음성 메모 앱을 켜고, 채집.



애초에 노래는 내가 감히 창조하는 것이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널려있는 이야기를 잡아채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살면서 들은 기도 소리, 분노 소리, 사랑 소리가 나에게 통과될 때 그 순간을 가두는 것뿐. 그렇게 음성 메모 속의 녹음 파일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지하철을 타고 길거리를 걷는다. 


세상 누구도 아직 듣지 않은, 이 세상에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노래에 맞춰서 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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