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어지럽히기

Special Essay, writer. 이미화 씀

by Local editor

<THE WORK OF WRITING>

· 웹매거진 <쓰는 일>은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씀을 경험하는 여성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쓰는 일'을 작업하면서 쓰는 사람보다 그리는 사람에 가깝다고 자주 생각했어요. 우리의 프로젝트를 정의하고 여성창작자를 섭외하고 그들의 글을 매거진 형태로 잘 그리는 일. 쓰는 사람과 동시에 그리는 사람, 작가와 독자의 경계를 연결하는 곳의 이야기를 '씀'을 통해 담았습니다.

2024년의 마지막까지 쓰고 그리는 날들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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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크레멘츠의 포토 에세이 『작가의 책상』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56인의 책상 사진이 실려 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작가들의 형형한 눈동자 뒤로 어지럽혀진 책상이 보인다. ‘시작하기’는 ‘미루기’와 같다는 수전 손택의 원목 책상, 털 복숭이 반려견의 방해를 받는 에이미 탄의 책상, 글을 쓰기 위해 방문을 잠그는 도로시 웨스트의 책상,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는 일을 매일 반복하는 존 디디온의 책상. (책상은 어디에 두고 소파 위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가는 토니 모리슨의 사진도 있다.) 나는 이들의 커다랗고 근사한 책상에서 익숙한 시간의 축적을 본다. ‘쓰는 사람의 시간’ 말이다. 무너질 듯 쌓여 있는 책과 각양의 필기도구와 커피 자국과 재떨이 속 뒤엉킨 담배꽁초와 교정 중인 원고와 덕지덕지 붙은 메모에서. 치열한 집필의 시간을 읽는다.


작업책방 씀의 ‘작가의 책상’ 전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권의 매끈한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작가의 책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메모가 쪼개지고 이어져 아름다운 문장이 되는지, 쓰는 사이사이 잠깐의 여유는 어디서 얻는지, 책과 더불어 글 쓰는 여성의 공간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건 씀을 운영하는 우리(미화, 혜은)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읽는 건 함께의 일이지만 쓰는 건 너무나 혼자의 일이라서, 그 외롭고 지난한 시간의 완성을 책상으로 기념하고 축하해주고 싶었다.


책방을 운영하는 4년 동안 우리는 서른 명이 넘는 여성 작가의 책상을 데려왔다. 편집자와 다정하고 세심한 메시지를 나눈 교정지가 2교, 3교라는 숫자로 묶여 놓이기도 하고,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가족이나 반려 동물의 사진이 붙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다시 쓰는 사람의 위치로 데려다 놓는 문장들과 언제라도 독자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훌륭한 책들이 쌓였다. LP, 향수, 그림, 인형 등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소품과 작업하며 듣는 플레이리스트, 자주 마시는 술, 사용한 찻잔이 그대로 전시되었다. 마지막까지 고심한 표지 시안과 미공개 원고가 이 전시만을 위해 공개되기도 했다.


작가의 책상 전시가 특별한 건 독자들의 참여로 하여금 작가들만의 작업을 모두의 경험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혼란스러운 애도의 과정을 써 내려간 에세이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의 사과집 작가는 ‘죽음에 대한 이상한 설문지’를 통해 독자에게 죽음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게 했고,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 작가의 일력 전시에서는 자신만의 특별한 하루를 직접 그려볼 수 있었다. 윤혜은 작가가 아이돌을 덕질해 온 유구한 역사에 대해 쓴『아무튼, 아이돌』 전시에서는 독자가 자신의 최애 아이돌을 영업할 수 있는 코너가,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오늘도 상처받았나요?』전시에서는 고민과 달달한 간식을 교환해 가는 코너가 준비되었다. 그렇게 작가의 책상은 독자에겐 입체적인 독서의 경험을 선사하고, 작가에겐 독자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작업책방 씀은 전시 공간이자 책을 사고파는 서점이면서 동시에 씀을 운영하는 우리 두 사람의 커다란 책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책방을 운영하는 4년 동안 각자 3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3권의 책은 모두 이곳 씀의 한쪽에 마련된 우리의 작업 공간에서 쓰였다. 작가의 책상에 전시가 없을 때에도, 영업시간이 아닐 때에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씀의 손님들은 좋든 싫든 우리의 작업의 순간을 목격한 셈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축하하는 일에도 야박하지 않았기에 책이 출간될 때면 작가의 책상은 우리 차지가 되었다. 그 사실이 머쓱하면서 기뻤다. 더 자주 낯 간지러워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동료 작가들에게 양보하는 마음으로 다음 전시를 꾸렸다.


2024년 마지막 작가의 책상은 천선란 소설가가 외국 곳곳의 책상에서 완성한 단편소설집 『모우어』의 전시로 진행 중이다. 작가가 여행지에서 구입해 온 가죽 가방과 마그네틱과 여행 사진으로 만든 엽서, 고양이 사진이 정신없이 놓여있는 책상을 보며 생각했다. 이 책상은 늘 어지럽혀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또 어떤 작가의 시간이, 기록이, 외로움이 펼쳐질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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