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Movie 기억 속 크리스마스/Editor. Cholog
기다리던 12월이 왔다. 크리스마스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12월이 오면 이전의 삶과 무관하게 세상이 마치 크리스마스 전과 후로 나뉘는 듯하다. 그러니 이 세계가 끝나기 전에 빨갛게 물든 곳곳을 온몸으로 누려야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매년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방바닥을 따뜻하게 틀어놓고 새벽부터 함께 맞추던 레고 조각, 초록색과 빨간색 피망을 모양내 반죽 위에 올리고 치즈를 뿌리던 저녁, 크리스마스에 맞춰 보자며 비디오 가게에 들러 하나씩 고르던 영화, 어두운 거실에서 홀로 빛나던 트리와 그 밑에 놓인 선물 하나. 엄마 현숙은 어린이들이 즐길법한 모든 것을 중하게 여긴 사람이다. 그런 그녀 밑에서 자란 내가 어떻게 12월에,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에 진심이 아닐 수 있을까.
재작년 겨울. 연차라곤 없는 사람처럼 일을 하던 아빠의 긴 휴가를 앞두고 다 함께 시간을 맞춰 제주도에 갔다. 그렇게 높게 쌓인 눈은 난생처음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렸다. 이런 날씨에도 산은 가겠다며 꿋꿋하게 예약했던 한라산은 입산이 통제되었고, 오름은커녕 어디라도 가보자 움직이면 휴무와 휴관의 반복 행렬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뭐했니?' 라고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꾸역꾸역 갔던 전시가 휴관이 되면 잔뜩 쌓인 눈을 굴려 다 같이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런 눈은 처음이야 라며 그 위에 털썩 누워 양팔을 움직였고, 눈 뭉치를 던지고 도망치며 눈싸움을 했다. 오늘 무슨 영화를 볼지 정하는 일은 아침마다 찾아온 루틴이었고, 저녁에는 식탁에 몰려 앉아 초성 게임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나의 겨울과 크리스마스에 이토록 귀여운 얼굴들이 있다.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은 장면들이 그렇게 같은 계절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것들을 다시금 재생하는 시간만큼이나 나를 더 살게 하는 것이 있을까. 어떤 세상과 세계가 나를 얼마나 얼마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할까.
① Love Letter(1999) 러브레터
‘おけんきですか' 오겡끼데스까-
영화를 빌어 모두의 안부를 묻고 싶다. 모두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② Wonderful Life(2001) 원더풀라이프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정거장. 이곳에 머물며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 영화를 만든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싶은 단 한 가지의 기억. 그 모든 풍경 중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을까.
③ Sleepless In Seattle(1993)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마지막 기회요. 행복을 놓치면 어리석은 사람이지. 추억 없는 겨울은 추울 거예요."
겨울만큼 운명을 기대하고 싶은 계절이 있을까. 괜스레 라디오를 켜보게 되는 밤.
④ Friends(1994-2004) 프렌즈
"I’ll be there for you. Like I’ve been there before. Cause you’re there for me too."
삶이 무료해질 때는 프렌즈를 열어 아무 시리즈나 틀어본다. 로스의 벙찐 표정, 조이의 ‘how u doing’, 제시카의 멋들어진 옷과 모니카의 춤사위, 피비의 엉뚱함과 챈들러의 유머. 길고 긴 시즌만큼이나 다양한 크리스마스 에피소드가 있다. 오래 보지 못한 얼굴들을 떠올리며.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 묻는다면 고민 없이 겨울을 외치는 내가 가장 기다리는 달은 11월도, 1월도 아닌 12월이다. 12월의 겨울은 유독 따뜻하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바깥에서 쳐다보는 안이 그리 춥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 사이 양껏 피어오르는 행복 때문이겠지.
Local Editor Cholog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