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판매하는 코카콜라, 블루보틀, 아이디어스
코카콜라(Coca-Cola)는 1886년 탄생 설화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음료를 둘러싼 이야기들로 가득한 기업입니다. 코카콜라의 제조 비법을 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들부터,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여신의 우아한 자태를 꼭 닮았다는 유리병, 크리스마스 전날 밤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동분서주하는 붉은 옷의 산타클로스 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코카콜라는 맥도널드 햄버거와 함께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거리의 부랑자나 똑같은 것을 마신다”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스토리텔링은 가오펑(高朋) 쓴 <이야기 자본의 힘>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스토리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제조 비법에 관한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 시, 존 펨버턴(John Stith Pemberton)이라는 군인이 공격 중 부상을 입게 됩니다. 펨버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군의관은 수술 중 그에게 다량의 모르핀을 투여했습니다. 존은 다행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수술 과정에서 마약에 중독되게 됩니다. 마약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존은 약제 제조 비법을 배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코카’의 성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코카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간 지역에서 자라는 코카과의 식물 잎에서 추출한 것으로, 약재로 쓰입니다. 코카에는 알칼로라는 성분이 있는데 머리를 맑게 하며 신장을 튼튼히 하게 할 뿐 아니라 양기를 보충해주며 진통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존은 연구를 통해 검은 액체를 한 잔 제조해 냈는데 성분은 콜라 열매, 탄산수, 사탕 그리고 다미아나(향신료나 차로 이용되기도 하고 성 기능 개선제 등으로 쓰이기도 하는 식물)등이었습니다. 이렇게 코카콜라가 탄생하게 됩니다.
코카콜라의 제조 비법을 두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콜라를 만든 존은 제조 비법을 은행의 대형금고에 보관합니다. 코카콜라의 제조 비법은 콜라를 한 병만 구입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포장에 표기된 성분표를 보면 코카콜라는 설탕, 탄산수, 캐러멜, 인산, 카페인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코카콜라에 들어가는 성분 중 1퍼센트가 안 되는 신비한 원료가 바로 핵심 기술이며, 이것을 ‘7X’라고 부르는 신비한 원료라는 소문이 납니다. 현재 은행의 금고에 그 존재에 대한 비밀이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제조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소문들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조비법을 아는 사람이 열 명도 안될 것이라고 추축 합니다. 이들은 지정된 시간에 동시에 입장해야만 금고 안의 제조비법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을 세 명뿐이라고 추축 하기도 합니다. 비밀을 아는 세 사람은 비밀을 1/3씩 비밀을 나눠 가지고 이 사람들의 신분은 비밀로 보장되어 있고, 영원히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면 비밀 전수가 끊길 수 있기 때문에 세 사람이 동시에 같은 곳을 가거나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에 관한 소문들을 접해보면 그야말로 소설 속의 이야기 같습니다. 실제 코카콜라의 비법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조비법이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이런 신비로운 이야기로 인해서 코카콜라는 더욱 매력적인 상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코카콜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뜨거운 여름, 산타 클로스가 나무 의자에 앉아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는 광고 장면이 떠오르실 겁니다. 톡 쏘는 탄산음료는 여름에만 소비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여름철에는 매출이 높은데 겨울철에는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코카콜라는 겨울을 상징하는 ‘산타 클로스’와 ‘코카콜라’를 엮는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접근은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고 ‘브랜드=스토리텔링’이라는 문법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매력적인 스토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들의 마음까지 머물게 합니다. 커피 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이 대표적입니다. 블루보틀은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원두를 볶아 핸드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제공합니다.
블루보틀 외에도 좋은 핸드드립으로 판매하는 커피전문점들은 많이 있습니다. 신선한 원두와 드립 방식 등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블루보틀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객관적으로 본다면 블루보틀 커피가 더 맛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블루보틀이 제품과 서비스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복합적인 경험과 스토리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블루보틀'은 17세기에 터키로부터 들여온 커피콩을 사용하여 중앙 유럽에 커피를 최초로 소개한 오스트리아 빈의 커피전문점 이름을 가져온 것입니다. 커피는 싱글 오리진으로 만든 고품질 커피로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을 사용합니다. 또한 손님들이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로스팅한 후 48시간이 지나지 않은 신선한 커피만을 판매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스토리에 기반한 고객 경험이 커피를 더욱 맛있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만 그만한 비용구조, 엇비슷한 맛과 품질만으로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고객 경험으로 차별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고객은 상품 자체의 속성만으로 구매를 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처한 상황에 따라 느낌이 더 좋거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돈을 보관해주는 국민은행보다 스타벅스를 더 선호하는 것이 요즘의 소비자입니다.
상품의 품질은 서비스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았을 때 앞으로 이야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블루보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커피 자체가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최고급 원두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커피, 심플하게 디자인된 파란색 로고, 친절한 직원, 감각적인 인테리어 등을 경험하기 위해 블루보틀에 오는 것입니다. 모든 산업이 성숙해짐에 따라 제품에서의 차이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국 고객의 마음속에 얼마나 더 깊이 각인되느냐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기업 관점에서 ‘최고’나 ‘최초’를 강조하기보다는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2014년 선보인 핸드메이드 플랫폼 ‘아이디어스(idus)’가 대표적입니다.
아이디어스에서는 판매자를 ‘작가’, 상품을 ‘작품’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디어스에서는 작가와 고객이 보다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공예 작가는 판매 페이지에서 자신의 근황이나 작업실 사진, 작품 관련 동영상 등을 게시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거나 쿠폰과 할인 이벤트를 공지하는 등의 앱 푸시 알림도 보낼 수 있습니다. 고객의 작가가 올린 스토리나 동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마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디어스 내에서의 SNS 시스템의 도입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지속적인 소통에 도움을 줍니다. 고객은 마음에 드는 작가를 팔로워 하고, 작가는 자신을 팔로워 하는 고객들과 꾸준히 소통하려고 노력합니다. 작품마다의 스토리를 접하다 보면 작품의 가치를 더 깊이 느끼게 되고 구매로까지 이어지곤 합니다.
작가와 고객의 사회적 관계 형성, 수공예품이라는 특성이 합쳐진 아이디어스는 다른 오픈마켓 플랫폼과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디어스에서 수공예품을 구입해보면 작가들이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가 들어 있거나, 자신이 시험 삼아 만들어본 작품 샘플을 보너스로 주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즐겨 먹는다는 간식을 챙겨주기도 합니다. 서로 간의 정이 오고 가는 것입니다.
구매자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구매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게 선물을 보내듯 후원을 할 수 있습니다. 후원금은 100원에서 1만 원까지 선택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하려고 하는 것과 달리 돈을 더 내고 구매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단순한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계가 형성되면 작품의 가격은 구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스 김동환 대표는 월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물건이 차고 넘쳐나는 시대에는 특별한 가치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적 정신과 맞는 아이템을 비즈니스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 유효했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유니크함, 그 특별함을 경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오랜 제작 기간을 감수하며 기다린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디어스 이전에도 수공예품을 파는 플랫폼은 존재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와 팬’의 관계를 만들어내기보다는 판매하는 상품 수를 늘리는데만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판매하는 상품수와 참여하는 작가가 많아지면 상품의 질이 관리되기 어렵게 됩니다. 수공예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나만의 특별한 감성을 구매하는 것인데, 스토리도 없고 상품의 질도 관리되지 않다 보니 충성고객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모두 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욕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