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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소비하는 사람들

명품의 본질은 상품이 아닌 브랜드 그 자체가 되는 것

리셀(resell)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리셀이란 ‘다시 판다'라는 의미로 접두사 ‘re-(다시)’와  ‘sell(팔다)’의 합성어입니다. 중고거래의 영어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리셀은 한정판이나 명품 등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매한 뒤 웃돈을 얹어 되파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중고거래는 사용하지 않고 있는 제품 등을 되파는 것으로 웃돈을 주기보다는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리셀 시장의 불을 지핀 것은 ‘나이키'입니다. 나이키가 지드래곤(권지용)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협업해 만든 한정판 스니커즈가 큰 화재가 되었습니다. ‘에어포스 1 로우 파라노이즈’ 시리즈는 출시 가격이 20만 원대였지만 리셀 마켓에서 30만~80만 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특히 818켤레만 발매된 한국 한정판의 경우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톡엑스’에서 3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지드래곤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스니커즈의 경우 한때 2000만 원대에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 리셀 시장에서 나이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브랜드를 압도합니다. 가장 비싼 신발도, 가장 많이 거래되는 신발도 나이키입니다.


리셀 시장이 형성되는 이유는 제품의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로 의류나 운동화(스니커즈), 전자제품, 아이돌 굿즈 등을 비롯해서 팬사인회 대기순서표까지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수백만 원이 넘는 샤넬과 롤렉스는 부담스럽지만 10~30만 원대의 운동화는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구매만 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런데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상품의 경우 구매 자체도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한정판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며칠 전부터 텐트를 치고 줄을 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많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한 방식이 ‘래플(raffle)’입니다.


래플이란 무작위 추첨을 통해 당첨된 소비자에게만 해당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래플 방식을 처음 도입한 것은 나이키였지만 이제는 아디다스와 무신사 등 브랜드에서 한정판 신제품을 출시할 때 쓰는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습니다. 제한된 수량으로 인해 희소성이 있고 당첨만 된다면 구매했던 가격보다 웃돈을 주고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기대감과 재미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나이키의 경우 나이키 홈페이지(SNKRS)에서 본인인증 후 일정에 맞춰 래플에 응모할 수 있습니다.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응모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당첨이 되어야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정해진 수량만큼만 판매하는 한정판의 경우 당첨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이 때문에 래플에 당첨된 사람들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자랑하는 글을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곤 합니다.




브랜드의 상징성을 소비하는 사람들

다시 나이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이키의 일부 제품을 자신이 생활하는 곳에 전시해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품마다 고유의 번호가 매겨진 에어조던 시리즈를 구매한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갈 마음이 없습니다. 한정판인 에어조던 시리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운동화를 방안에 모셔놓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잠을 잘 때 끌어안고 자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나이키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존재입니다.


운동화의 본래 기능은 운동할 때 신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키 브랜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소유하는 것 그 자체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면 축구를 더 잘할 것 같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면 농구를 더 잘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을 감성적 소비라고 합니다. 제품의 기능적 속성이 아니라 나이키라는 브랜드가 주는 즐거움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기능적 가치 그 이상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브랜드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내가 되고자 하는 미래의 이상형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브랜드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에 ‘브랜드가 곧 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MZ세대의 명품 소비를 우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브랜드와 대상이 다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성적 소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사회적 지위의 간접 표명 심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낼 수 있는 도구나 매개체가 필요한데 이때 중요해지는 것이 브랜드입니다.


애플, 나이키, 구찌, 롤렉스와 같은 브랜드 안에는 제품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들과 상징들이 숨어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감정과 상징을 소비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특정 브랜드를 사용함으로써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내가 되고자 하는 미래의 이상형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기업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브랜드에 다양한 감성적 요인들을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자신들만의 스토리와 정체성(Identity)을 브랜드로 발전시켜왔습니다. 그 결과 명품의 본질은 상품이 아닌 브랜드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샤넬을 소유한다는 것은 샤넬 가방의 기능적 특징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샤넬이 주는 브랜드의 상징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명품에 대한 선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이러한 심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들은 제품을 한정판으로 출시하고 가격을 더 높이는 방법으로 수요를 자극합니다. 제품 가격이 높을수록 사려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상을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고 합니다. 가격이 높을수록 가치가 높다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판매전략입니다.


수요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

한정판으로 출시된 제품이어서 구매할 수 없거나, 또는 가격이 너무 높아서 구매하는 것이 어렵게 되면 일명 짝퉁이 나타나게 됩니다. 수요가 공급을 초월하면 수요의 빈틈을 짝퉁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명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동일한 짝퉁을 별도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수백만 원이 넘는 자신의 가방이 손상될까 봐 평상시에는 집에다 잘 모셔두고 일상생활에서는 짝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이 평상시에 들고 다니는 것은 짝퉁이고, 진품은 집에 모셔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진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짝퉁이 진품에 가까운 대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짝퉁이 사라지기 힘든 이유는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문제는 짝퉁을 진품인지 알고 구매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이라면 찾아가서 환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온라인에서 구매한 것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온라인의 특성상 실제 상품을 보고 구매할 수 없다는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 악의적으로 짝퉁을 진품인 것처럼 속여서 판매한다면 구매한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비가 오면 알 수 있다고 하죠. 가방이 비에 젖지 않게 옷 안에 넣고 걸어간다면 명품이고, 비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서 머리 위로 가방을 든다면 짝퉁이라고요. 


명품 소비자 증가할수록 짝퉁도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이에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플랫폼들은 사람이 개입하는 방법과 기술을 적용하는 방법 등으로 문제를 해결 해내가고 있습니다. 

'트렌비(Trenbe)'의 경우 소비자가 가품, 불량, 파손 등에 대한 우려 없이 명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감정사의 검수를 통과한 제품만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서 위조상품을 모니터링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솔루션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기반으로 정품과 가품을 구별합니다. 패션, 식품, 뷰티 등 산업마다 수십만 개 이상의 정품 이미지 데이터를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 모델에 적용하여 외관상 유사한 위조상품과 모조품을 찾아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짝퉁을 만든 곳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특유의 배경색과 사진구도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의 외관상 이미지는 똑같아 보이지만 미세하게 배경색과 사진의 구도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인공지능이 식별하고, 이외에도 상품의 설명, 구매 리뷰, 가격 등의 데이터도 분석에 활용됩니다. 정상 가격보다 지나치게 저렴하거나, 구매 리뷰 중 '짝퉁인 것 같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의심사례로 넣는 식입니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90% 정도를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기술로 짝퉁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 토큰)와 같은 블록체인 기술로 정품인증을 도입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인 루이뷔통·까르띠에·프라다는 블록체인 플랫폼인 ‘아우라(Aura)’ 컨소시엄을 구축했습니다. 아우라의 목적은 명품 업계의 골칫덩이인 ‘짝퉁’ 방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이뷔통 가방은 아우라 플랫폼을 통해 고유한 디지털 코드를 받게 됩니다. 여기엔 무슨 재료로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제조와 유통과정에서 환경과 윤리규정은 제대로 지켰는지, 소유권은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모든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일종의 ‘디지털 정품 인증서’인 셈입니다.

제조기업이 NFT와 같은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짝퉁에 대한 브랜드 가치 훼손을 막아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용을 절감해주는 효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 기술로 제조에서 유통까지 모든 과정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진품인지 가품인지에 대한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품인증에 대한 비용이 큰 폭으로 감소시켜 수익 향상에 기여할 수도 있습니다.

샤넬, 구찌, 롤렉스, 애플 등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소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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