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직접 브랜드 경제
브랜드가 중간의 유통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기 위해서는 ‘안정감’이 중요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사진, 영상, 텍스트로 설명된 내용만으로 구매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온라인에서 운동화를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발이 편하지 않다거나, 침대를 구매했는데 원했던 수준이 아니라면 소비자들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중심 기업들은 무료 반품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라는 컨셉을 내세운 올버즈(Allbirds) 신발의 경우 30일 동안 무료 반품이 가능합니다. 신발을 밖에서 신고 닳았더라도 이유를 묻지 않고 반품 또는 교환이 가능합니다. 배송비도 올버즈가 부담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인 것입니다. 한편으로 품질관리와 소비자 관리에 자신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온라인으로 매트리스를 판매하는 캐스퍼(Casper)는 100일간 사용해본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0% 환불을 보장해줍니다. 환불된 매트리스는 어려운 이웃에서 기부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매트리스 산업은 소수의 몇개 브랜드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었고, 배송 등의 어려움으로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어려운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캐스퍼는 매트리스를 압축해 냉장고 크기의 박스에 넣어 배송하는 방식으로 배송비를 기존의 1/10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전문기사의 방문 없이도 소비자가 혼자서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맞는 컨셉으로 제품의 종류를 최소화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고민을 덜어주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매트리스를 판매하고 이를 고객에게 직접 배송한다는 것은 기존 기존의 법칙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침대는 하루 1/3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 때문에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에 맞춰 물리적 매장을 갖춘 리테일 기업이 소비자의 구매과정이 이루어지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수익의 상당부분을 지불해왔습니다. 오프라인은 쇼룸이기도 했고 매트리스를 테스트해보는 체험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캐스퍼의 시도는 혁신적이었으나 모든 차별화는 동질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사례를 보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막대한 자원을 가진 기존 기업들이 전략을 재정비해서 검색엔진 마케팅, 소셜미디어 마케팅, 디지털 마케팅 등을 강화하면 선두주자로서의 이점은 생각보다 빠른 시간안에 사라지게 됩니다.
실제 캐스퍼는 D2C 비즈니스모델이 가지는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캐스퍼의 경우 마케팅 위주의 양적 성장에 몰두하면서 엄청난 돈을 쏟아븟다 보니 수익성이 낮아졌습니다. 여기에 유사한 형태의 경쟁자가 등장하는 한편, 기존 시장을 점유했던 오프라인 기업들이 온라인에 대응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고객을 팬으로 만들어서 지속적인 재구매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매트리스의 특성 상 한 번 구입하면 오랫동안 사용하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D2C 브랜드는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해서 하나의 카테고리에서 경쟁자를 압도하는 브랜드가 되어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와비파커입니다. 와비파커는 온라인으로 유통단계를 줄여 저렴하게 판매하는 기업입니다. 국내와 같이 미국도 안경사들의 독점구조로 인해 안경값이 비싼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경은 개인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써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와비파커는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 다섯 개를 고르면 집으로 배송해주는 방식을 떠올립니다. 안경원에 가지 않아도 맞춤형 안경을 제작해 보내주는 것입니다. 이후 5일간 체험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안경을 고르고 시력, 눈 사이 거리 등을 입력하면 2주 뒤에 맞춤 제작한 안경을 배송해 줍니다. 모든 배송비는 와비파커가 부담하고, 기존의 방식보다 가격은 1/5 수준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좋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와비파커는 구매의 안정감과 사용의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5개의 안경을 선택해서 착용해 볼 수 있는 것과 배송비를 와비파커가 부담하는 것은 구매의 안정감입니다. 사용의 안정감에서는 고객과의 강력한 유대감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업보다 고객경험부서(콜센터)에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하고, 콜센터에 전화벨이 울리면 6초 이내에 응답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늦은 저녁시간에도 고객 응대가 되기 때문에 고객의 불편함이 최소화되고 있습니다.
와비파커는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의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니즈를 파악한 후 본사에 쇼룸을 오픈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전역에 오프라인 쇼룸 매장을 확장중에 있습니다. 유통 마진을 없애기 위해 온라인만을 고집하는 기업들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와비파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이들을 다시 온라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이 온라인의 매출을 올리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와비파커는 새로운 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입니다. 3D 매핑 기술을 활용하는 증강현실이 대표적입니다. 아이폰에 얼굴 인식 기능과 얼굴의 뎁스 맵(depth map, 관찰 시점(viewpoint)으로부터 물체 표면과의 거리와 관련된 정보가 담긴 하나의 영상 또는 영상의 한 채널)을 만드는 셀프 카메라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술은 수천 개의 점을 사용자의 얼굴에 투사해서 얼굴의 독특한 구조를 인식하고 적응하는 센서 기술입니다. 이 센서를 활용하는 앱에서 가상의 안경을 착용한 사실적인 모습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와비파커 앱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선택한 후 화면을 아래로 이동하면 아이폰 셀프카메라가 작동하여 사용자 얼굴에 안경이 투영됩니다. 가상의 안경은 얼굴 방향을 바꾸거나 머리를 기울여도 얼굴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금속재질의 안경테라면 빛이 반사되는 사실적인 경험까지 재현이 됩니다. 이를 와비파커는 '버추얼 트라이 온(Virtual Try-o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D 매핑 기술을 활용하는 증강현실의 경험을 SNS상에 손쉽게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가상으로 만들어본 안경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공유해서 지인들에게 의견을 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사용자에게는 재미요소이고, 아직 와비파커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와비파커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와비파커 앱을 이용해서 10분만에 시력을 측정할 수 있고 와비파커와 제휴 관계를 맺은 안과 의사들이 원격으로 시력을 검사해줍니다. 온라인 유통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오프라인 매장과 쇼룸을 운영하면서 폐쇄적이었던 안경산업을 본질적으로 혁신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현행법상 원격의료가 금지되어 있어 안과의사의 검사를 받을 수 없고 안경사 외에는 도수가 있는 렌즈를 판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도수렌즈 온라인 판매 허용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와비파커와 같은 기업들이 국내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