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 트렌드. 일하는 방식,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모델의 변화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일과 여가생활을 병행하는 워케이션(Workation)의 수요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여행(Vacation)'의 합성어로 장기간 여행지에 머무르면서 일하는 업무 혹은 여행의 형태를 말합니다.
코로나 이전에 워케이션은 '블레저(Bleisure)'나 '레저 재핑(Leisure Zapping)'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블레저는 ‘비즈니스(Business)’와 ‘레저(Leisure)’의 합성어로, 출장 중 잠깐 휴가를 보내거나 출장 전후에 개인의 일정을 덧붙여서 여행을 즐기는 활동을 말합니다. 레저 재핑은 여행 측면에서 일이 여가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워케이션은 코로나 때문에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워케이션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재택근무가 대표적인데요. 한국에서는 1997년도 재택근무제 도입 근거가 근로기준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5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곳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재택근무를 '집에서 노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재택근무는 업무의 생산성이 낮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서 일했던 방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기점으로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했고, 이로 인해 재택근무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택근무로도 충분히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워케이션은 업무방식의 변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제조업과 같이 물리적인 장소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이야기하지만 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업무의 많은 부분이 기계화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과거보다는 더 적은 사람으로도 공장 등의 운영이 가능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에도 무인화가 진행되면서 더 적은 인력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과거 근로자들은 조직을 떠난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사무실과 책상이 없어지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해보니 이런 걱정들이 기우(杞憂, 쓸데없는 걱정)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들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근로자들이 자신의 지식이나 재능을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시장에서 팔 수 있다면, 조직을 떠나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회사'라는 곳에 속했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인류 역사에서 파격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자본은 '땅'이었고, 산업화 사회에서 자본은 '돈'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식사회에서의 자본은 '지식'입니다. 그런데 지식은 기업의 캐비닛 속이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식의 비중이 높아지면 질수록 기업은 점점 개인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와 워케이션과 같은 트렌드가 강화되면 우리의 생활과 사고방식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근로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일하는 방식은 변화되기 마련입니다. 워케이션에 대한 비효율성으로 다시 회사로 출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장기적인 흐름은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일하는 방식이 변화될 것입니다. 물리적인 장소가 아닌 개개인이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하게 된다면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마련입니다.
트렌드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MZ세대를 이야기하고,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고, 원하지 않는 것은 더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가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면서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워케이션과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무실이 모여 있는 오피스 상권의 매출액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반면, 관광지와 동네 상권의 매출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읽고 워케이션을 비즈니스로 만드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일본 어드레스(ADDress) 주요 고객은 도시를 떠나서 자유롭게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방생활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한 곳에 발이 묶이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이럴 경우 어드레스를 정기 구독하면 됩니다. 어드레스 구독료에는 기본적인 설비와 가전제품, 와이파이, 전기료와 같은 모든 공과금이 포함되어 있고, 택배도 대신 수령해 주는 등의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합니다. 각 지역의 거점에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집 지킴이'가 있어서 현지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어드레스는 시골과 민가 중심의 빈집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나가는 한편 주변의 여관, 호텔, 게스트하우스, 항공사, 차량 공유 회사 등과 제휴를 맺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드레스의 비즈니스모델은 구독입니다. 구독 모델은 디지털 콘텐츠와 같은 무형의 상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구독으로 판매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어드레스의 구독모델은 셰어하우스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셰어하우스는 계약된 한 곳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어드레스의 주거 구독 서비스는 플랫폼에 있는 모든 주거 공간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어드레스는 월 4만 엔 정도의 정해진 구독료를 지불하면 일본 전역에 있는 빈집이나 리모델링한 유휴 별장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JTBC에서 방영한 '효리네 민박', tvN에서 방영한 '삼시 세끼'를 시작으로 한 달 살기와 같은 트렌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관광지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달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한 지역에서 머물며 삶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행의 흐름이 관광지에서 도시로, 그리고 동네로 넘어오면서 로컬에서 힙한 카페와 레스토랑, 편집숍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호텔처럼 개인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해 주는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컬스티치는 2013년 동네호텔을 시작으로 국내 최초로 코워킹(coworking)과 코리빙(coliving)이 결합된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브랜드입니다. 로컬스티치는 현재(2023년 3월 기준) 전국에 23호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컬스티치는 1박 투숙도 가능하고 1달, 1년 단위로 머물 수도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처럼 요리하는 주방은 공유형태로 이용할 수 있고 사무공간만 빌려 쓸 수도 있습니다. 거주는 하지 않으면서 사무공간만 사용할 경우 월 단위로 결제해서 사용하면 됩니다.
로컬스티치는 단순히 숙박과 일하는 공간만을 대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로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 기반의 콘텐츠를 공간에 녹여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입주한 기업들의 재능과 역량에 투자해 수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내일상점'입니다. 내일상점은 1인 크리에이터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투자를 받아 창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입니다. 연남동에서 운영 중인 레스토랑 '아각아각'은 말레이시아 현지 음식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말레이시안 요리사 바시라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로컬스티치 3호점 커뮤니티의 일원이었습니다.
로컬스티치는 농부들이 직접 키운 농산물을 판매하는 ‘마르쉐 채소시장’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 1회(매달 첫째 주 월요일) 운영되는 채소시장에서는 질 좋은 산지 직송 신선식품을 농부들과 직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마르쉐 채소시장에서는 농작물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농작물을 단순히 판매하는 장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고, 농작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숙박을 예약하는 방법은 야놀자나 여기어때, 호텔스닷컴, 네이버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이상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숙박 사업자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단기 숙박을 제공하는 형태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멘션은 중장기 숙박 서비스 플랫폼입니다. 미스터멘션은 7일에서 90일 이내 기간 동안 숙박 예약을 원하는 사람들과 공실을 최소화해서 효율적인 운영을 원하는 숙박업체를 연결하는 플랫폼입니다. 한 달 살기 수요가 많았던 제주도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서비스를 확장 중에 있습니다. 미스터멘션은 "당신의 쉼을 응원합니다"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달 살기와 같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쉼'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중장기 숙박은 하루 이틀 묵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의 컨디션이 중요합니다. 이에 미스터멘션은 직원들이 직접 숙소를 방문해서 인증하는 '방문 인증 숙소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게스트와 호스트 간 매칭 성사율을 높이는 형태로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고객은 중장기 숙박을 통해 높은 할인을 받아서 좋고, 숙박업체는 공실률을 최소화와 광고비 절약 등을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워케이션을 도입한 많은 기업들이 업무의 생산성을 위해서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는 형태로 돌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은 근로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형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라는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에 기업은 워케이션을 통해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직업인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자세와 윤리적 행동, 근무시간 엄수와 보고절차, 작업장 안전 및 비상사태 처리지침, 커뮤니케션 및 협업 방식, 성과평가 방법, 기밀 유지 및 데이터 보완, 복리후생 등에 대한 지침과 정책이 명확해야 잠재적인 오해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인프라 및 기술 지원이 되어야 원활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격으로 일하는 것인 만큼 와이파이와 같은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고,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도구가 갖춰저야 합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툴의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 등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각자 떨어진 장소에서 일하는 만큼 일의 내용을 취합하고 관리하는 것들도 갖춰져야 합니다. 원격작업자가 작업의 내용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와 함께 데이터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백업과 보완에 대한 사항이 지원되어야 합니다.
성과평가는 원격근무의 효율성만큼이나 어려운 주제입니다. 근로자들의 만족도는 높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원격근무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일할 때는 근무 태도나 노력하는 모습 등을 반영할 수 있었지만 원격근무는 어렵습니다. 결국 기업별로 측정 가능하고, 달성 가능한, 관련성이 있으면서 시간의 제한이 있는 SMART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가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결과 및 피드백을 기반으로 필요에 따라 조정도 필요합니다.
규칙을 만들어 놓고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구성원 모두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서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기업문화가 필요합니다. 유연성과 신뢰, 일과 삶의 균형, 공정한 평가시스템 등 긍정적인 기업문화가 워케이션과 같은 원격근무를 가능하게 합니다. 떨어져서 일하지만 일할 때는 손쉽게 연결될 수 있고, 필요한 것은 지원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활동이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으로 강요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문화로 자리 잡아야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취향과 경험을 판매합니다>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모델, <취향과 경험을 판매합니다>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어에서 저자 직강의 이러닝과 강의교안 PDF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