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처음을 산다

낯선 세상의 문을 여는 아이

by 이음샘

서주가 또다시 친구를 다치게 했다.
뛰지 말라고 말리는 친구의 눈을 꼬집고, 주먹을 휘둘렀다. 작은 몸짓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만, 친구의 눈에는 선명한 상처가 남았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머릿속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가득 찼다. 학부모와 상담을 하고, 행동 수정 방안을 고민하고, 더 이상 다치는 아이가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질문이 있었다.

'왜 서주는 치료를 받지 않을까? 발음이 저렇게 부정확한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내 안에서 서주 엄마를 향한 비판의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서주는 말을 또박또박하지 못한다. 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말이 트이면서 혀가 굳어 발음이 어눌했고, 그 탓에 친구들과의 소통이 어려웠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 오해가 쌓였고, 오해는 쉽게 분노로 변했다. 밀치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그러나 이상했다.
서주가 누군가를 다치게 했을 때, 그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아파할 때, 아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미안함도, 당황스러움도,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
‘이 아이는 앞으로 또 다른 친구들을 다치게 할까?’

나는 서주 엄마에게 아동발달센터에서 진단을 받아보시라고 조심스레 권했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과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아이를 이해해야, 내가 제대로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치원 선생님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나는 마치 하소연하듯 서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첫마디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네? 서주가요? 유치원에서는 굉장히 다정한 모습이었는데..."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아는 서주는 친구를 때리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쓰는 아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처음에는 힘들긴 했어요. 서주는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열고 나면 정말 다정한 아이예요. 유치원에서 체험학습을 한 번씩 가면 꼭 저한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사다 주곤 했어요. 제가 힘들어 보이면 도와주겠다고 졸졸 쫓아다니기도 했고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사랑을 많이 주고, 마음을 담아서 대해줬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서주의 행동이 변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발달 치료는 받다가 중단했어요. 그건 사실 서주가 거부해서 그랬던 거예요. 센터에 다니는 걸 자존심 상해했어요."

이 문제의 다른 결을 보게 되었다. 서주는 지금, 낯설고 서툰 처음을 살고 있구나.




유치원에서는 한 반에 16명이었고, 두 명의 선생님이 함께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는 20명가량의 아이들을 한 명의 교사가 본다. 교과마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 모든 변화가 서주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이 낯섬의 시간 동안 나는 서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서주도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를 다치게 한 날, 서주는 쉬는 시간 동안 상담실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수업 중의 과잉 행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냥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서주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1학년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은 모두 다르다.
어떤 아이들은 한 걸음씩 머뭇거리며 적응하고, 어떤 아이들은 거침없이 뛰어들며 경계를 시험한다. 어떤 아이들은 스스로를 감추고, 그 안에서 조용히 세상을 탐색한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한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변해가는 자아. 아이들은 혹독한 적응의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서주를 보며 나 자신을 떠올렸다.

나는 낯선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던가? 새로운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던가?


적응이란, 한 걸음 다가설 용기와 한 걸음 기다려줄 여유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과정을 서주에게 충분히 허락했을까? 그러나 알고 있다. 서주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만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담대히 나가도록 돕는 어른의 성숙한 손길, 자신과 주변 친구들이 다치지 않도록 단호하게 이끄는 목소리, 그리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신뢰.


아이들은 작지만 깊은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다. 내가 그들의 첫걸음을 충분히 존중했는지 자신감이 없어졌다. 어쩌면, 우리 모두 한때 서주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서주에게,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떤 손을 내밀어야 할까?

마음을 추스르고 그 답을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단호하고, 또 확고하게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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