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문득 그게 미안하죠 남편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전했다.
그런데 때론 남편과의 대화에서 나의 상처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 가시 돋친 말로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는 사실은 모두 나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나의 귀에 그 말들이 들렸고,
지난 장면들을 되뇌며 결국 스스로가 가장 아파하고 있었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생각이지, 사건 자체가 아니다. - 행복을 풀다, 구글 X CBO 모가댓
그때의 내가 남은 깊은 상처가 남편에게는 아직도 나의 잘못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럼 그때 네가 잘했어?"
이 말이 다시 한번 상처로 돌아왔다.
늘 나의 아픔이 너무 커서 늘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
나는 왜 그때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할까.
과연 그때의 나는 잘못이었을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어제 아이와의 대화에서 문득 깨우쳤던 말이 있다.
"왜 나는 늘 동생에게 뭐든 빼앗겨야 해?"
첫째와 둘째의 등원할 때 킥보드 전쟁이 있었다.
동생이 등원 후, 첫째와의 대화에서 아이가 울먹이며 토해내듯 내뱉은 말이었다.
그랬구나,
첫째에게는 자신의 키보다 훨씬 작아진 킥보드를 동생에게 건네주는 것도.
작아진 옷이나 소품들을 동생에게 주는 일들도 모두 동생에게 빼앗긴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엄마인 나는 오늘에야 안 것이다.
그동안 늘 자신이 독차지하던 엄마/아빠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표현해 왔던 아이였다.
이제야 아이의 울먹임, 울부짖음이 이해가 된 순간이었다.
'그래. 그땐 내가 잘못했지, 실수였지'라는 말을 나는 왜 쉽게 툭 하지 못하는 걸까.
내 안에 갇혀하지 못하는 이 말들을 우리 아이도 엄마처럼 똑같이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방어, 보호의 벽
과거의 남편은 부부가 다르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표현이 종종 와이프인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기억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훨씬 유연하고 부드러워진 남편이지만 내 안의 고정관념이 남편을 가끔 그때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요즘 긴 터널의 끝을 잘 건너왔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니 약 10년이었다.
내 인생의 피크점에서 어느 골짜기를 만났고 그때부터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오며 살아가기까지. 내 삶이 골짜기에서 귀한 인연인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우연히도 남편의 인생 골짜기에서 나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의 바닥에서 만나 함께라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신혼 초, 그리고 첫 육아에서 남편은 감정의 공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덕에 다정하고 친절한 행동은 많은 사람이었지만 감정의 공감을 해주지 않았다. 홀로 서울에 올라와 살았던 시간이 길어, 자신의 감정도 모두 닫아두고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두 아이를 함께 키우며 이제야 서로 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작은 부분에도 공감하고 사소한 대화와 감정도 조금은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내가 '우행 꿈'이라는 서로의 내면을 이야기하며 꿈을 이뤄가는 내면 소통 모임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공감의 부재가 컸기 때문이었다. 나란 사람은 찐 F인데, 그 어느 곳에서도 그 F의 감정을 공감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 모임을 운영했던 것이었다. 우행 꿈 모임을 운영할 수 있었던 핵심 키는 남편의 공감력 부재였다. ㅋㅋㅋ 고맙다 남편.
그리고 이젠, 남편과도 많은 공감을 나눌 정도로 소통과 대화가 많아졌다.
매일 오르는 산을 오늘도 오르며 생각했다.
육아로 미치도록 힘들었던 순간, 싸이의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막둥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길, 산책로를 미친 듯이 걸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한참 걷다 보면 감사함이 올라왔다.
그때의 나는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이구나.
OO 엄마, OO 와이프, 말고 OOO이라는 사람의 존재의 가치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삶은 사실 상대적으로 매우 평온하고 안정적이다.
우행꿈이라는 모임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았고, 그래서인지 도전을 멈추고 안주하려 한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의 내가 떠올랐던 건 이유가 있겠지.
나의 지난 10년의 기나긴 어둠의 장면이 떠올랐던 이유가.
그리고 지금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라는 는 책을 읽고 있는 이유도.
자신의 진짜 내면을 찾는 길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친 듯이 행복하고 감사하고 즐겁지만
정 반대편으로는 미치도록 아프고 힘들다.
그래서 모두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지금 삶이 평온하고 행복하다면 굳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만나러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간, 진짜 나를 만나고 싶은, 만나야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 미친 듯이 스스로가 힘들고,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혹은 새벽에 자꾸 깬다거나
이유 없이 마음의 어려움이 있다면, 어쩌면 나를 둘러싼 여러 표면적 가치들에 둘러 쌓여
자기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외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를 알고 이해해 가는 과정
그 지점들을 잘 감내하고 나아가야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극기 훈련을 참여했던 파커 J 파머가 극한의 상황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그 안으로 뛰어드세요.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위험하고 극한의 절벽에 매달려있는 상황에서 버티거나 빠져나올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안으로 뛰어들라니. 이 말이 무슨 말임을 알기에 무언의 공감을 했다...
미치도록 힘든데,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그 안의 본질이 뭔지 그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알 수 있다.
자신의 힘듦과 어려움의 이유를.
그 이유를 만들고 찾아내야 하는 것도 결국 나니까.
돌아보면 10년 전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일 중독이었다.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난 덕분에 텅 비워진 사랑의 마음들을 채워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존감도 올라갔다. 그리고 약 8년 전, 첫 임신 출산 후 다시 고비가 왔다. 출산/육아 우울증이었다. 평생을 함께 해오던 오랜 친구들과 지인들 덕분에 어려웠던 시기들을 잘 넘겼다. 그리고 둘째 출산에서는 첫 번째 경험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던 내면의 문제들의 마침표를 찍어가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로 몇 개 되지 않지만.
그 기억들도 이젠 잘 흘려보내주고 있다.
이렇게 기록으로.
"잘 잊기 위해 기록한다."
당신 안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공개된 장소에 내면을 기록하면서 자기 객관화를 하고 부정적 경험을 긍정적으로 미화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공개된 장소인 블로그의 공개글의 효과를 통해
스스로를 괴롭혔던 어려운 내 안의 마음들과 그와 관련된 경험들을 스스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교정했다. 덕분에 내면에 많은 평화가 찾아왔다.
쉽진 않지만 과거의 나보다는 200% 만족스러운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게 온 고통과 시련은 내가 감당할 만큼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이 고통과 시련을 스스로 감당할 강한 내면의 힘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