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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사람

“선생님”

by 은나무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그중 “고마운 사람” 이란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자 가끔 생각나던 한분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선 고마웠던 사람도 지금 현재 고마운 사람도 참 많다. 그중 오늘 떠오르는 그분은 사실 성함도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는 고마운 줄 몰랐고 그저 귀찮고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고등학교1학년.

나는 일찍이 문제아로 찍혔다.

나의 학교 생활은 1학년 전체 학생 중 출결상태 엉망으로 남녀재학생 통틀어 1등을 할 정도였으니 다른 걸 봐도 불량스러운 면에서 남달랐다. 모든 선생님들 눈밖에난 골칫덩어리 여고생이었다.


오죽했으면 임신막달 담임 선생님께서 참다 참다 배를 부여잡고 내게 매질을 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나는 답안 나오는 문제 학생이었다.


그런 나에게 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잘해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심지어 학생부 선생님 이셨는데 나에게 만은 관대하셨다. 어느 날 복장 불량으로 교무실 학생부에 불려 가 혼이 나고 있었다.


-선생님 바쁘신데 이 학생은 제가 맡을게요.

1학년 1반 이은정인데 제가 잘 알아요.

바쁘실 텐데 어서 다른 일 보세요.


-그래주시면 제가 감사하죠. 부탁드립니다.

아주 꼴통이에요. 이 녀석.


다른 선생님께 혼나고 있던 나를 챙기셨다.

그리고 마저 혼날 줄 알았는데 나를 붙잡고 조곤조곤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무섭게 혼을 내는 게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처음엔 경계를 했으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툴툴 거리며 내 나름의 변명을 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은 학교 담벼락 밑에서 친구들 몇몇이 함께

몰래 담배를 피우다 그 선생님께 딱 걸렸다.

다들 학생부에 끌려갈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서 혼만 나고 아무 일 없었다.


그런데 내가 없을 때 친구들한테 그런 일이 또 있었는데 그때는 그 선생님이 학생부로 전부 데려갔고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와 그 선생님이 친인척 사이인 줄 오해하게 되었고 학교에 소문이 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선생님 수업시간.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은정이를 편애하는 게 맞아.

나도 모르겠어. 학기 초부터 말썽을 일으켜서 자꾸 교무실에 불려 오고 미운 정이 들어서 그런 건지 왜 자꾸 더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에게 솔직히 말하면 은정이를 특별히 예뻐하고 있는 게 맞아.


응? 이게 무슨 말이야? 그 소릴 듣는데 갑자기 짜증이 확 나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뜩이나 애들이 오해하면서 나만 따로 특혜를 받는 거처럼 질투를 하는 마당에 대놓도 저런 말을 하다니…


사춘기 여고생에겐 정말 듣기 싫은 말이고 받기 싫은 관심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더 선생님께 버릇없이 굴고 튕겨져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1학년이 채 끝나기도 전 가을쯤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신다고 했다.


나는 그러시든지 말든지 오히려 반가웠다.

성가신 관심이 없어지니 말이다.

세상 모든 것에 삐뚤고 불신 가득한 나에겐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도 달갑지 않았었다.


그런데 가끔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선생님 생각이 난다. 그분은 그때 어떤 마음으로 나를 챙기셨던 걸까?


여기저기 미움받고 막 나가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주신 특별한 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한다.


오늘은 그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그땐 몰랐지만 정말 감사했어요


선생님 한번 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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