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눈빛이 차가워지는 순간

by 은나무


그와 함께 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낮과 밤이 바뀐 우리의 일상.
우린 낮에 잠을 자고 오후 늦게 일어났다.



저녁을 먹고 그는 가게로 출근을 했고

나는 집안을 정리했다.



그새 식구가 하나 늘었다.
그의 어머니가 키우는 티즈가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내가 키우자고 했다.



작고 하얀 생명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그가 출근한 밤에도 나는 강아지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잠깐 밤에 강아지랑 산책도 하고 그 동생이 가끔 쉬는 날이면 집에 놀러 오기도 했다. 그럴 땐 각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밤공기를 마셨다.



동생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를..



하루하루가 평범했다.
아주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가끔은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잘 흘러가는 듯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나의 하루를
꼼꼼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오늘 뭐 했어?”


“어디까지 다녀왔어?”


“미진이 왔었어?"


동생의 이름이 미진이었다.



처음엔 관심이라 생각했다.
낯선 서울에서 혼자 있는
나를 신경 써주는구나 싶어 기분도 좋았다.



근데 문득,
그의 질문 끝에
조용한 확인 같은 게 느껴졌다.



“그래? 미진이 혼자였지?”


“딴 사람 데리고 만난 거 아니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미진이가 누굴 데려와. 당연히 혼자였지. 강아지 데려와서 우리 콩이랑 같이 공원 산책했어 ”



웃으며 말했지만
가슴 어딘가가 살짝 쿡 하고 찔렸다.



이상하네.
분명 똑같은 말인데
처음과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처음엔 다정함이었다.



근데 오늘은
조금…
의심처럼 들렸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뭐 당연히 떨어져 있는데 하루가 궁금하겠지.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이제 네가 전에 살던 동네는 가지 마. 가봐야 뭐 뻔하지.

너 어릴 때 어울리던 애들하고 양아치 같은 애들만 있을 거 아냐. 이제 그 동네 가지 말고 상아언니 만나려면 이쪽으로 오라 해. 엄마 만나러 광주(경기도) 갈 때는 나한테 얘기해. 되도록 내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갈게"



"아니 뭐 그렇게 까지 해야 돼? 상아언니 말고 친구나 동생들도 있고, 꼭 언니 보러 이쪽으로 오라고 하면 힘들잖아 내가 가기도 하고 그럼 되지. 그리고 여기서 엄마네 갈때 버스 타고 가도 실컷가.. 오빠는 낮에 자야지 나를 태워다 줄 시간이 어딨어~"



" 내가 하라면 하란데로 하면 되지 왜 이리 말이 많아?

나는 네가 그 동네 가는 것도 싫고, 같이 일하던 친구들 만나는 것도 이제 싫어. 상아야 너랑 특별했으니까 그나마 허락하는 거야."



"그리고 미진이도 거리를 둬!

미진이 걔도 까질대로 까진 애야 내가 딱 보면 알아!"



"그럼 난 하루 종일 머 해? 그냥 여기 갇혀서 당신 오기만 기다려 밤새?"



"상아 가끔 놀러 오라 하고 강남에 미용 배울 때 알던 언니 산다며 그 언니는 건전하니까 그 언니나 만나."



"강남 사는 언니 언제 나도 한번 같이 만나는 자리 만들고"



점점 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나고 관계를 끊는 거 까지 내가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하는 것까지 통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늘 든든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의 눈빛이

어느 날 날카롭게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왠지 모를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날 밤,
그는 늘 그랬듯 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잠들어 있었다.



숨소리는 잔잔하고 표정은 평온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나는 좀처럼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 있었던 대화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내가 하라면 하란 대로 해.”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말투도 표정도…
뭔가 달라졌다.



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근데 곧
스스로 생각을 지워버렸다.



내가 예민한가 보지.
사랑하니까 신경 쓰는 거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날 처음으로 느꼈다.



그와 함께 있는 침대에서
왠지 모를…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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