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속에 잠겨가는 시간

by 은나무


그 후 나는 점점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가게에 출근해서도 거의 한 테이블 정도만,

그것도 힘들지 않은 손님 위주의 룸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되는 자리들.
그래도 그는 알아서 하루 일비는 꼭 챙겨줬다.



상아 언니는 술을 잘 마시고 또 좋아했다.
그래서 일할 때도 거의 매일 마시다시피 했는데,

서울까지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퇴근해서 취한 몸으로 매일 택시 타는 일도 부담스럽고, 대중교통도 고역이었다.



게다가 나는 점점 그와 함께 서울에 남게 되니
언니는 결국 다시 원래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상아 언니 대신,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정말 언니처럼 잘 따랐다.
누가 봐도 나보다 언니처럼 키도 크고,

강단 있어 보이는 친구였다.
항상 “언니, 언니” 하며 뭐든 챙겨줬다.



가게는 송파에 있었고, 동생은 천호동에 살았다.
쉬는 날이면 동생이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둘이 올림픽공원이나 석촌호수를 산책하며 서로 의지했다.


나는 점점 집에 있는 옷가지를 그 사람

오피스텔에 가져다 두게 되었다.
짐이라고 할 것도 많지 않았던 지하 원룸방은
서서히 내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새로웠다.



물론 여전히 낮과 밤이 뒤바뀐 삶이었지만
지하에서 지상으로, 그리고 고층으로 올라온 기분.
조금만 움직여도 세상 끝이라 느껴졌던 곳에서
이제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창문을 가진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남자는 언제나 듬직했고
나를 어린애처럼 다정하게 대했다.



시골 흙집에서 지하 단칸방으로 왔을 때도
나는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이라니.
이젠 정말
더 좋은 곳으로 온 것만 같았다.


그는 말했다.



“이제 일하지 말고 좀 쉬어. 얼마면 되는데? 생활비.”



엄마도 챙기고, 핸드폰요금도 내고…
월세나 공과금은 여기선 걱정할 필요 없으니
딱 그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다야?
연이야, 이제 밤에 이렇게 고생하지 마.
당분간은 내 옆에서 쉬어. 나랑 여행도 다니고 푹 쉬다가 낮에 할 수 있는 일 찾으면 되잖아.”


나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게 ‘든든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게 사랑이 아니라
천천히 나를 가두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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