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신해철
5분 , 10분 일찍 나서기가 안되어 항상 바쁜 출근길이지만
꼭 한 가지 거쳐야 하는 순서가 있다.
바로 음악 선곡
회사로 가는 20~30분 동안 듣는 음악은 하루의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선곡된 리스트를 기분에 따라 고른다.
국내 가요, 90년대, 20년대 발라드, 주로 내가 찾는 키워드 들이다.
아 옛날 사람...
그날도 어김없이 셋 리스트를 선택하고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갑자기였다. 그 음악이 나온 것은
서태지의 하여가.
아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언젠가 한 번은 누구에게든 터 놓고
말하고 싶었던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태지
내 십 대 , 이십 대, 삼십 대 초반을 가져간 사람
나의 우상이었던 사람
누구보다 불행했던 유년시절 , 그의 불행을 염려하며 내 불행을 이겨냈다.
친구, 낯선 이들, 먼 곳으로의 여행, 커뮤니티 활동, 적극적인 의견 피력 , 1인 시위
내가 벌어 내 기호에 돈쓰기, 모든 것이 그와 닿기 위해 시작하고 지속한 행위 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랐다. 컸다. 나이 들었다.
그와 함께 나이 들고, 어른이 되었다.
우리만의 세계가 생긴 것이 너무 좋아 죽을뻔했다.
그는 그렇게 나의 세계였다. 우주였을지도.
우주 끝 그의 외로움은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가 외로울까 함께 나서 싸웠다.
그가 외로울까 없을 때조차 손 흔들고 외쳤다.
외롭지 말아요 우리가 있잖아요.
다시 돌아온 그가 요즘 사람들한테 밀려 외로울까
기어코 먼 먼길을 따라가 응원했다.
외로울까 봐
늘 외롭다고 했으니까
우리뿐이라고...
스캔들 이후 그 외로움이 얼마나
그를 부유하게 만들어 줬는지 알게 되었다.
외로울 거라 생각했던 시간들에 연인과 사랑하고
다시 헤어지고, 다른 연인을 만나 아이를 낳는
그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함께 해온 나를 대하는 매너는 형편없었다.
형편없었다가 내가 지성인으로서 할 수 있는 그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자 표현이다.
음악만 좋아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단호히 말한다.
나는 그의 '음악만'이었다면 그 세월 동안 함께 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덧 붙인다. 그 음악 이제 다시 안 듣는다고..
당신들이 뭘 아냐고.. 나의 이십 년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고 싶다.
또 다른 나의 벗은 신해철이었다.
지지직 대는 , 그야말로 고장 나기 일보직전의 워크맨
이어폰을 부여잡고(이어폰이 안테나 역할을 했었다.) 듣던
고스트 스테이션은 내 하루 중 유일함이었다.
하루 중 그 시간만은 온전히 사람다울 수 있었다.
친척집에 얹혀 온갖 수모를 겪던 그 시절 나의 동아줄이자
생명줄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로 나는 그 방의 추위를 건졌다.
그 시절이 다 지나고 ,
그는 나의 대통령을 지지하고, 미군 장갑차를 규탄하고
나와 같은 방향에 서서 옳은 일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었다.
나와 함께 그도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죽음으로 나의 어느 시절 한 부분이 같이 통으로 떼어졌다.
이 상실감을 같이 나눌 또래 사람들이 많음에 감사했다.
나는 차마 그의 음악을 듣지 못한다.
슬프고 억울하고 울먹여 아프다.
듣지 않을 음악과 차마 듣지 못하는 음악 때문에
나의 출근길 손은 열심히 스킵 버튼을 넘기느라 바쁘다.
토해내듯 이렇게 쓰고 나니 문득 더 그리워진다.
굿바이 마왕
그곳에서도 하늘을 날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