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반찬

by 천천히 한걸음

오전 10시 집중근무 시간이다. 이 세상에 모니터와 나만 있는 것 같은 집중의 순간 문자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엄마다. 엄마의 문자다. 엄마의 문자는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봐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햇수로 3년째 단 하루의 빠짐도 없이 매일 아침 우리 집으로 오셔서 아이를 깨우고 먹여 등원시키고 계신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대한민국 조부모 육아의 일상일 것이다. 엄마는 그 후 30분 넘게 차를 타고 가서 시장을 보고 엄마의 식당 장사를 시작한다. 동네에서 조그마한 곱창전골 가게를 운영 중이다. 간판은 곱창전골이지만 동네 장사가 으레 그렇듯 그날 시장 본 재료에 따라 그날의 주요 메뉴가 바뀌기도 하는 동네 밥장사다. 아침 시장 보기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30분 이동은 거의 끝에서 끝인 거리로, 시장까지 들러야 하는 엄마의 고됨을 말하자니 글을 쓰고 있는 손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이렇듯 엄마는 육아와 노동으로 이어지는 생활이다. 이 일상을 감히 엄마의 삶이라고 쓰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인터넷 육아카페에서 친정 엄마를 갈아 넣는 육아라는 표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표현이 지나친 감이 있지만 , 사실은 지금의 내가 그렇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엄마가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아예 오전 식당 장사를 포기하고 아이를 돌봐주고 계신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새로운 것도 많아 초등학교 입학을 제2의 출산이라고들 한다. 그러한 사정으로 동네에서 나름의 자리를 잡아가던 식당은 강제로 시간 조정에 들어갔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그저 파워포인트로 최대한 크고 잘 보이게 “ 3월 한 달간 오후 2시 이후에 문을 엽니다. 00 곱창 주인 올림”이라고 작성하고 프린트하여 기계로 매끈하게 코팅한 용지를 두어 장 내미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제 아무리 초집중 상태라도 엄마의 문자는 그냥 넘길 수 없다.

즉시 확인한다. 아, 역시나 사진이다.

초점이 조금 흔들리고, 지나치게 가까이서 찍은 음식 사진, 정확히는 반찬 사진.

여기서 나의 아… 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감탄의 “아”이다.

너무나 곱고 예쁜 반찬들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 저런 재료들이 있었나?

분명 지난주에 마트를 갈 수 없어 냉장고가 텅 비었을 텐데 저건 다 뭐지? 하고 두 손가락을 벌려 큰 사진을 조금 더 당겨서 본다.

놀랍게도 3가지 반찬의 주재료는 감자 한 가지다.

시간과 노력과 근막염으로 늘 아픈 발바닥 통증을 참는 노력까지 세배로 들여 한 가지 재료로 만들어낸 3가지 반찬.


첫 번째 반찬

감자와 당근을 얇게 채 썰어 얼기설기 뭉쳐 튀겨낸 감자튀김이다.

저 노란색 색감은 계란 노른자 만으로 저렇게 되는 걸까?

살림도구가 변변찮은 우리 집에 저렇게 잘 튀길 만한 깊은 웍이나 튀김기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런 두께의 튀김을 균일하게 튀길 수 있지?

M 사 감자튀김 귀신인 아들의 취향 정조준 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사진 너머로 파사삭 소리가 들린다.


두 번째 반찬

국민 반찬 이자 나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감자조림

알감자가 없어 감자를 쪼개어 조리셨군. 저 자르르한 윤기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우리 집에 물엿이 떨어진 지 좀 됐는데, 물엿 없이 윤기 나게 하려면 뭘 넣어야 하는 거지? 이건 꼭 물어봐야지.


세 번째 반찬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침 요리다.

감자를 주재료로 한 것 같지만 감자보다 버섯과 야채가 훨씬 많이 든 듯한

동그랑땡 형태의 부침

언제나 채소의 중요성을 강조한 엄마 덕에 편식 없는 아이로 자라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나물반찬인 아이의 감자 같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사진을 보던 중 연이어 엄마의 문자가 도착한다.

아직도 메신저보다 문자 메시지를 쓰는 엄마, 그렇게 몇 번을 가르쳐 드렸건만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아 매우 긴 내용을 띄어 쓰기 하나 없이 보낸 엄마다. 더군다나 경상도 사투리 그대로 쓰다 보니 문자를 읽다 보면 저절로 머릿속에서 엄마 음성이 지원된다.


“00이 반찬만들어노았다.맨날햄소세지먹이고배달음식먹이지말고

냉장고재료를가지고만들어먹여야한다.

김치냉장고제일위칸에고기다지놓은것은………………

ㅇㅇ이 국끓일것이고덩어리고기는석쇠구이만들라고들고와따”


아이 이름으로 시작해 냉장고 식재료의 위치와 특성, 향 후 활용 계획으로

끝나는 15줄의 문자를 이제 나는 틀린 맞춤법과 , 사투리와 , 붙여쓰기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척척 잘 읽어 낸다.

그 안에 들어있는 엄마의 최선을 읽어 낸다.

엄마의 없이 살았던 삶에 대한 회환도 읽어 낸다.



“엄마가 니한테 해줄거는 엄마 몸 하나 고생하고, 쌔가빠지게 움직이가, 니캉 박서방캉 조금이라도 맛있는거 멕이고 그라는거 그거 하나밖에 없다. 내가 니한테 해줄 돈이 있나 뭐가 있노. ”



지금 내 나이보다 딱 3살 어렸을 때 엄마는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되셨다. 먹고 살길이 없어 시작한 음식장사였으나, 음식장사 때문에 빚을 지게 되어 먹고 살수가 없어지는 반복 속에 땅속의 감자 마냥 옹기종기 살아낸 엄마는 치열했던 세월 속에서 얻어진 손기술로 죽어가는 우리 집 냉장고 식재료 들을 살려낸다.

그 옛날 어린 우리 자매를 먹여 살려냈듯이


나는 오늘도 엄마가 해놓은 반찬 먹으러 집으로 간다.


다른날의 어느 반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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