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일기_8] 80만 원

by 천천히 한걸음

엄마가 왔다 가셨다.

며칠 전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었다.

아이와 놀이터에 있다고 했더니 집에 가서 다시 통화 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직감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반 톤 낮은 목소리 , 단어 사이사이에 낀 불안감.


그 사이 몇 번의 통화가 이루어졌고, 엄마가 낮시간 우리 집에 오셨다.


내가 결혼하고 몇 번 엄마의 금전적 사고가 발생하였다.

금전적 문제라고 고쳐야 할까?

사고라는 건 뜻하지 않게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엄마의 금전 문제는 주로 엄마의

의지로 일어났으니까 그건 문제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손에 꼽힐 만한 액수로 3번 정도 도움을 드렸다.

수습이라고 고쳐야 할까?

도움이라는 건 내가 원해서 도운다는 의미일 것인데, 엄마의 금전 문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몫으로 돌아왔고 수습해야 했으니까.



이번에도 변함없었다.

누군가의 언제까지 얼마를 갚아주겠단 약속이 있었고,

그 약속을 덜컥 믿은 엄마가 있었다.

처음부터 나에게 상의하지 않아 금액이 늘어났고

버티다가 실토하는 엄마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변한 것은 이번에는 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가지고

방문하셨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는 내가 흥분하지도 동조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가진 돈과 없는 돈을 끌어올 능력 두 가지 모두 없고

엄마는 더 이상 나에게 어떤 도움을 청할 입장이랄 것이 없었다.


자세한 사항은 남편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착한 사람이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들어 주거래 통장 잔고를 확인해봤다.

아이 앞으로 매달 5만 원씩 넣어놓는 적금식의 통장 잔고가 80만 원 정도다.

당장의 경비라도 쓰세요. 하고 이체할까 하다 손가락을 위로 밀어 은행 어플을 종료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밑이 빠지지도 않았고 장독도 아니지만 사라져 버릴 80만 원이 아까웠다.

물 붓듯 사리질 80만 원이 나는 이제 아까워졌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나눠 먹고 집 앞으로 배웅을 나갔다.

걸어가는 내내 본인의 해결책을 체계적으로 나에게 설명하는

엄마 얼굴에 햇빛이 정통으로 비쳤다.

장롱에 있던 모자를 빌려드릴 걸 싶었다.


평소와 달리 택시를 불러 태워드리지 않고, 같이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언젠가 이런 기분으로 둘이 나란히 앉아 있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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