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은행에서 ㅇㅇ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태권도 차에서 내릴 아이를 기다리다 받은 문자 한 통.
혹시 하는 마음에 입금자명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ㅇㅇ 경남 글짓기 한마당 당선 상금이었다.
2등에 해당하는 상금이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내가 2등이라고? 차선이라고? 정말?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보다 글이 편했다. 말을 못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 앞에 나서서 말할 때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지만, 말보단 글이 글로 써내는 말이 편하고 좋았다. 자간과 행간에 숨어 숨을 고르고 다음 자음 모음을 써내려 갈 수 있는 그 여유와 안전이 좋았다. 좋아서 언제나 글을 쓰고 어딘가에 내어 보았다.
초중고 내내 교내외 백일장에 늘 참여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상장 하나 제대로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동시를 지어 오라고 주제를 내셨고 잘 한 사람 것을 복도에 걸 거라고 하셨다.
듣자마자 잘 쓰고 싶어 손가락이 꼼질댔다. 이 때다 싶어 쓰고 또 쓰고 고치고 고쳐서 동시를 지었다.
선생님께 제출하고 며칠을 두근거렸지만 딱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렇게 잊고 있을 때쯤 선생님께서 조용히 불러서 말씀하셨다.
“ㅇㅇ 이랑 ㅇㅇ이 시가 1,2 등인데 네 것도 나쁘진 않아... 그런데 복도에 걸려면 액자를 마련해야 하는데 혹시 액자를 사 올 수 있겠니?”
그 길로 식당일을 하고 있는 엄마의 앞치마를 붙잡고 매달렸다.
"엄마 내 동시가 젤 잘해서 꼭 액자를 해서 걸어야 한단다,.. 엄마 액자 값 좀 꼭 도~(줘)"
그 시절 우리 집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주인아주머니 눈치를 보느라 나를 달래느라 주방에서 동동거리던 엄마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 후로도 그런 식이 었다. 어딘가 써서 내면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어딘가 입상 하지도, 크게 이슈 되지도 않는 그 정도 글 딱 그 정도의 ‘애매한 재능’.
<계속해도 될까>라고 고민도 하지 못할 만큼 늘지 않는 글솜씨.
그러던 중 수미 작가의 애매한 재능을 만났다.
읽었다고 쓰기보다 만났다고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와 동년배이며 뛰어서 5분 거리의 옆 고등학교를 나온 그녀를 만나
동네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온 것 같았다.
우리 고등학교 때 거기 알죠? 실내화 신고 뛰어 나가서 돌아다녔던.
그럼 신혼집이 거기셨나 봐요? 저도 거기가… 라는 스몰 토크로 인사를 나누겠지.
"그런데 저도 글을 써요"라고 수줍게 고백할 것 인다.
저도 글을 쓰는데 꾸준하지도 않아요. 그러면서 잘 쓰기를 바라며 불안해하죠.
그럴 땐 글쓰기 관련 책을 읽는 것으로 도망쳐요. 작가님의 책이 최근 저의 가장 큰 동굴이었어요...
그럼 힘을 얻어 다시 써요. 물론 그전에 도피했던 아니 읽었던 글쓰기 책과 철저히 비슷하게요.
정희진 작가는 책이 나를 관통할 때라고 했었다. 국이 끓기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잠들길 기다리는 동안
애매한 재능에 대한 작가의 일대기가 나를 관통했다. 읽는 동안 나를 관통하는 그 느낌에 좋아
한 번에 다 읽어버리지 않고 짬짬이 아껴 읽었다. 짬짬이 숨고 , 짬짬이 웃고, 짬짬이 위로받았다.
[조리원에서 몸을 추스르는 동안 읽으려고 가져온 책이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세상에 예븐것이라는 산문집이었다…마흔에 등단.. 나는 그 부분에 밑줄을 쳤다. 프로필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 P. 00
라는 부분을 나는 줄을 쳤다. 귀퉁이를 세모로 두 번 접어 언제든 펼칠 수 있게 해 두었다.
내 노트북 겉면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둔 박완서 작가의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위에 붉은색 볼펜 밑줄을 한번 더 그었다.
산후조리 기간에 책 보면 눈 버린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서 수유시간 틈틈이 숨어서 위안을 받았던 그 책 들. 기쁨과 축하 속에서 피어나던 불안과 텅 비어 버린 마음을 위로 받았던 박완서 작가의 글이 있었다.
거기 그 조리원에도 나의 조리원에도.
책이 주는 감동이 공감에서 시작해서 위안으로 끝나는 이 멋진 광경을 보라, 나는 주책맞게 떠들어 본다.
" 이 책 세상에 너무 좋다. 내는 완전 내 얘긴준 알았다 아이가?! 우리 그때 돈 모아서 서울 가서 본 오아시스 공연 있다 아이가? 세상에 이 작가도 거기 갔었단다" 앞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던 친구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 니 쫌 귀엽데이?"
글을 쓰는 방법론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한 삶을 조목조목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작가의 마트 알바에서 경험담이 결국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아닐까 생각했다.
[절대로 위스퍼 산 사람에게 화이트 권하지 마라.]
같은 생생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이고 싶다.
자신의 경험으로 위안을 주는 에세이를 나도 언젠가 쓸 수 있겠지?
애매하지만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는 그 어느 재능을 믿어 본다.
언젠가는 이런 나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내고 싶다.
세상에 내지 않는 글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 솔직하고 감춤 없는 에세이를 읽고 그렇게 솔직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긴 싫으니깐
언젠가 세상에 내고 싶은 글을 향해
애매한 재능이라도 있다고 믿고 싶은 나를 향해
나와 같은 시대에 교복을 입고 같은 신혼집 동네를 살았었던 작가의 책을 꼭 쥐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