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심부름꾼
계단을 서너 칸 내려오다 다시 올라갔다.
'며칠 전에 놓고 간 우산도 가져가야겠다.'
다시 들어가니 다들 쳐다본다.
"우산을 두고 갔어요. 지난번에도 두고 가고."
"이 우산 가질래요?"
"네? 아니에요. 지금 두 개나 있어요."
"내 차에 우산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가져가요. 깜빡깜빡하는 걸 보니 많을수록 좋겠구먼."
"아니, 뭐 이렇게까지.."하면서도 거절은 못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우산 한 개는 가방에 넣고, 한 개는 지팡이 짚듯하고, 마지막 한 개는 날위해 펼쳤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병원에서 막 나오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시는데, 손에 여러 겹으로 접은 신문지가 들려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머리 위로 신문지를 들고 걷고 계셨다. 할머니가 비를 덜 맞았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보였다. 할아버지의 은빛 머리칼, 작은 어깨 그리고 굽어진 등이 젖고 있었다. 그 순간 장난 같은 바람이 휙 하고 불었다. 신문지가 빗물에 젖어 못쓰게 돼버렸다.
'오늘따라 우산이 많은 이유가 있었네.'
"어르신, 우산을 못 챙겨 나오셨나 봐요?"
두 분이 천천히 돌아 보셨다.
"하긴 비가 내리다 말다 해서 헷갈리기는 해요. 이 우산 쓰세요."
"아이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쓰셔도 돼요. 저도 얻은 거예요.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아요."
손사래치시는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쥐어드렸다.
"안녕히 가세요."
"고마워요."
"네."
마침 보행 신호로 바뀌어 걸음을 서둘렀다.
우산 위로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활기차게 들렸다. 마음이 반달음질로 춤추듯하며 활짝 웃었다. 뒤돌아 보니 우산을 사이에 두고 느리게 걷는 두 분의 모습이 보였다. 마음이 가벼웠다. 착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받은 사랑 중 하나를 갚아서다. 사랑의 빚을 갚을 때 행복한 감정이 영수증처럼 따라온다. 사랑의 빚은 평생 동안 갚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의 덩치가 커진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 확연하게 티가 날 때고 있지만 받았는지도 모를 때가 실은 더 많다. 평생 동안 사랑의 빚쟁이로 살겠지싶다. 내게 오는 사랑을 기꺼이 받는 것이 주는 사람에게도 행복이겠지? 난 받은 마음 간직해 두었다가 이때가 싶을 때 사랑의 물줄기로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정성 담아 사랑의 빚을 갚는 삶,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