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아파트 수요장에서 고추튀김을 샀는데, 크고 너~무 맛있어. 고기가 꽉 찼어. 사다 줄게. 먹을래?"
"우리 집까지 가져다준다고?"
"훈이 아빠한테도 사다 주려고."
"그래. 갖고 와봐. 먹어보자. 가게로 갈게."
가깝게 지내는 후배인데 고추튀김을 먹으며 우리 집 근처에서 피자가게를 하는 그녀의 남편과 내 생각이 났나 봐요. 안 그래도 며칠 전 라디오를 듣는데 고추튀김 얘기를 해서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어요. 기분 좋게 고추튀김을 받으러 나갔어요. 집 밖은 공기가 찬 데다 바람까지 불어 생각했던 것보다 춥더라고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서너 발 앞서 걷고 있었어요. 등을 가리고도 남는 큰 가방을 메고 실내화주머니를 달랑거리며 종종걸음으로 걷는 모양이 귀여워 미소가 지어졌어요. 아이의 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빨리 걷는 걸 보니 쟤도 어지간히 추운가 보다. 저러다 넘어질라.'혼자 생각하다 내 추위가 견디기 힘들어 아이를 앞질러 빠르게 걸었어요. 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큰길 대신 건물 사이로 뛰어갔어요. "아우, 너무 춥다. 롱패딩을 입고 나올걸. 악!" 순식간에 두 무릎이 꿇리고 두 손이 퍽 소리를 내며 바닥을 짚었어요. 내장이 '꿀렁'하고 움직이는 게 느껴졌어요. 누가 보면 절이라도 하는 줄 알았을 거예요.
"아~ 아파. 아우 따가워. 아이씨, 진짜!" 두 손은 얼얼하고 양 무릎은 화끈거렸어요. 일어서는데 횡단보도에서 봤던 아이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더라고요. 집에 가서 어떤 아줌마가 꽈당 넘어지더라고 지엄마한테 말하겠죠. 앓는 소리 내며 겨우 일어서는데 창피해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그런데 일어나 손을 터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뭐 어때. 얼굴도 모르는데. 알면 또 어때. 같이 웃으면 되는 거지.'
고추튀김을 받아서 집으로 오며 혼자 어지간히 구시렁거렸어요. 집에 도착해 손바닥과 양쪽 무릎을 보니 상처가 크더라고요. 손바닥은 아스팔트 자국이 붉은색으로 선명한 데다 까지고 멍이 들었고, 특히 왼쪽 무릎의 상처가 제법 컸어요. 양쪽 무릎과 손바닥에 밴드를 붙이고 고추튀김 먹겠다며 식탁에 앉았네요. 따뜻할 때 먹어야겠다 싶더라고요. 튀김은 바삭함이 살아있을 때 먹어야 하잖아요. 고추튀김을 보니 한숨이 먼저 나왔어요.
"어이구, 이거 먹겠다고 쯧쯧. 이 꼴이 됐어요." 포크를 쥔 손이 아프고 무릎은 쓰라렸어요. 인상을 쓰며 고추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죠. "오~진짜 속이 꽉 찼네. 음~~ 맛있다." 쩝쩝대며 다섯 개 중 네 개나 먹어치웠어요. 맛도 맛이지만 추운 날씨에 상처 입으며 받아온 거라 더 야물 지게 먹었어요. 고추튀김이 전리품 같았어요. 고추튀김을 우걱우걱 씹으며 생각했어요. '찬바람 피 한다고 건물사잇길로 가지 말고 그냥 큰길로 갈걸. 추워도 천천히 걸어갈걸. 발 밑을 잘 볼걸.'
1초 후를 모르는 게 사는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나려면 예고 없이 발등에 뚝 떨어지잖아요. 멀찍이서 봐도 알아볼 수 있게 천천히 낙하하지 않지요. 사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발등에 떨어졌어요. 그중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았어요. 너무 놀라서 멍해있다가 밤 새 울며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오늘 넘어졌다 일어난 것처럼 마음을 일으켜 어떻게든 살아야 했어요. 그러면서 문제도 해결되었고요. 어떤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되는 거라서 고민 대신 하루의 발등만 보며 걸었어요. 그렇게 살면서 버티는 힘이 길러졌다고 생각해요. 나를 키운 건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삶의 문제들이었어요.
다들 그렇게 살죠. 태어나 걷기 시작하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잖아요.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고 매일 걷는데 아직도 걷다 넘어지냐고 그 누구도 말 못 할 거예요. 갑자기 맞닥뜨리는 상황은 시선이 다른 곳에 있을 때 발을 거니까요. 넘어질 때마다 처음처럼 아픈 건 당연한 거니까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은 거예요. 그리고, 살다 보면 이런 생각에 이르기도 해요. 세상이 내 발만 걸어 넘어뜨리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졌는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비슷비슷해서 딱히 억울할 것도 없구나라고요. 삶의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을
보고 겪으며 아~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알아가게 돼요.
넘어지는 건 삶의 자연스러움이에요. 괜찮아요. 일어나면 되니까요. 넘어지는 것보다 일어나는 게 더 힘든 거예요. 툭툭 털고 일어나던, 울며 일어나던, 쌍욕 하며 일어나던 아무튼 일어나면 되는 거잖아요. 너무 아프면 천천히 일어나도 되는 거고요. 일어나니까 맛있는 고추튀김도 먹고, 식구들한테 응석 부려 위로도 받고, 좋잖아요. 다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다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죠.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는 게 중요하니까 좋은 마음만 잘 지켜보려고요. 갑작스러운 상황은 어찌 못해도 마음자세는 어찌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마음에서 나오는 좋은 말과 좋은 생각이 좋은 길을 낸다는 것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