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도 생활밀착형으로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 사는 토마스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신앙이 좋아서, 어쩌고 저쩌고 그리하여 선교를 나가서 어떤 시련을 겪게 되고...... 그리하여 어쩌고 저쩌고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목사님들이 미국 사람들을 설교시간에 자주 호출시키는데, 듣다 보면 나도모르게 편안한 꿈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다. 왜 그런걸까?
미국에 산다는 그 토마스라는 양반이랑 나랑 아무 관계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유명인도 아니고, 오늘 목사님이 말씀하셔서 처음 들어본 이름이고, 너무 동떨어져보이는데다가 별로 흥미도 없고, 감동도 없어서이다.
피티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듣는 이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어렵다.
방송을 하다보면, 어려운 용어나 굳이 들을 필요 없는 예시를 드는 진행자도 많다. 쇼호스트가 뭔가 잔뜩 공부를 해서 막 설명을 한다. 장황한 피티 안에는 온갖 박사, 교수들이 어벤저스 급으로 등장한다. 나 어제 공부 열나게 했으니 들어봐라는 식의 피티는 숙제 열심히 한 아이들이 선생님께 칭찬받고 싶어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때론 똑똑해 보이려고 너무 애쓰다 보면 허세작렬 쇼호스트로 비춰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똑똑하게 보이기 위해서 피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고객의 상황을 밀접하게 이해하고 고객의 행동을 이끌어 내느냐이다. 고객 생활에 딱 달라 붙어서 '어? 이사람 용하네. 어찌 알았지? ' 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고객집에 같이 살다 나온 사람마냥 그들의 생활을 잘 이해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은 그릇 방송을 하는데, '있어보이게' 하고 싶어서, 더블 플레이팅으로 삼단 케잌 장식에 온갖 초로 장식했다. 랍스타에 별별 스테이크로 재벌집 식탁 스타일로 세팅했었다. 재벌집에 밥먹으러 가본 적은 없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최대한 럭셔리하게 말이다.
분위기 빡~~힘주고, 로맨틱 로맨틱 로맨틱~~!!!
아주 그냥 우아의 끝을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고객의 반응은 그저그닥 ....
방송 중 고객 질문은 이랬다. "근데 저건 사이즈 어떻게 돼요?" "냉면기에 고기 양념 버무려도 되는 사이즈에요?""대체 몇 개 주는 대요? " " 싱크대에 다 쌓으면 어느정도 부피에요?" " 김치 담을 건데 어디에 담아요? 찬기에 담으면 몇 쪽 올라가요?"
우린 완전 뻘짓의 대마왕들이었다.
집에서 된장끓이고 김치 담을 우리 엄마들에게 매일 먹는 식사에 이 그릇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잘 어울릴 수 있는지를 제안하는게 아닌, 그저 '예뻐보이기'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랍스타 집에서 촛불 켜고 드시라고 했다. 남편이랑 오붓하게....
윀~~ 뭔소린지.
형형색색 어려운 소스에 보기만 해도 니글니글거리는 저 소들과 닭들, 진짜 미국 추수감사절에나 맛볼 것 같은 요리들이 나란히 누워있다.
물론 고객은 판타지를 소비한다. 허나 그 판타지가 완전 비현실을 찍고 안드로메다로 달려간다면 고객은'나랑은 안어울리겠어.' 로 결론 짓는다. 넌 내꺼 아님. 끝~!!
한번은 돈가스 방송을 하는데, 쉽게 데워서 5분안에 먹는 돈가스가 컨셉이었다. 결혼 안한 후배놈이 자꾸 옆에서 이거 과일 담고 샐러드에 또는 돈가스 김밥 싸서 요렇게 해서 자기야 아~~~~!!! 라고 해서 남편 입에 넣어주라고 하는 거다. 도시락에 여보 사랑해라고 카드를 써서 같이 피크닉을 가랜다. 일단 간단해 보여서 사려고 했다가 뭔가 복잡하게 도시락을 싸서 뭘 하라고 하니깐 갑자기 사기 싫어진다. 또 도시락을 싸서 남편한테 러브레터를 쓰라고 하니깐 더 사기 싫어진다. 우리 제발 그냥 데워먹게 해주세요 네에~~!!!
10년차 현실 부부의 눈에 누군가 밥을 떠먹여준다는 행위는 저것들이 혹시 불륜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되는 짓(?)이다. 보통 오래 살면 먹여주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이다. 애도 떠먹여야 되는데 남편입에 떠먹여줄 정신이 어디있겠는가?물론 입에 넣어주는 부부도 있겠지, 있을거다. 하지만 대다수의 오래된 부부가 어떤 형태로 식사를 하는지 그려질거다. 후배가 방송중에 계속 남편 입에 넣어주라고 해서 김밥으로 후배 입을 막아버렸다. 물론 사랑하는 후배다. 너~~~ 결혼 하고 얘기해~~!!!
저 놈이 시집가고 애 낳고 10년 이상 살아보기 전까지는 선배가 왜 저러는지 모를거다.
현실 부부에 대한 공부를 글로 배웠습니다. 우리 후배님은요....
나의 피티는 생활밀착형이어야 한다. 진짜 생활 속에서의 실현 가능한 실천 할 수 있을 법한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이 마케터다. 소설을 쓰고 앉아 있으면 곤란하다.
롤스캐롤라이나에 사는 토마스씨가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나에게 어떤 자극을 주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내것 같은' '내 생활일 것 같은' 철저히 생활 깊숙히 밀착된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고객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