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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정쇼호스트 Oct 13. 2017

빛나야 할 것은 오직 상품 뿐

빛나야 할 것은 오직 상품 뿐이다. 


빨간 립스틱, 블링 블링 반짝이는 의상, 제대로 힘준 머리, 귀걸이 목걸이 시계 팔찌 온갖 장신구로 전신을 치장한다.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가야 할 지 갈길을 잃는다. 한 번은 팔찌를 판매하는 쇼호스트가, 본인은 천만원이 넘는 명품 팔찌를 차고, 또 다른 팔에는 판매하는 5만원짜리 팔찌를 차고,나온 걸 보았다. 허걱 도대체 어떤 팔찌를 봐야 할 지, 지금 판매하는 저 팔찌는 왜 그리 초라해 보이는 건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 둘을 같이 매치해서 차고 나온 걸까? 


방송 할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여자가 된다. 

옷에 실오라기 하나 삐져 나오는 것도 용서가 안된다. 특히, 판넬을 보여줄 때는 판넬 코팅 때문에 카메라와 빛반사가 될 때가 있다. 그러면 화면에 글자가 빛에 반사가 되어 잘 안보인다. 그런 경우 난 바로 최적의 각도를 찾아서 미리 맞춰 놓는다. 내가 가지고 들어가는 판넬이나 물병이나 커피 빨대가 화면에 지저분하게 나올 때가 있다.아무리 멘트가 주옥같아도, 지저분하게 시선을 잡아먹는 소품은 멘트를 방해하는 해방꾼이다. 


세트팀이 싫어하는 호스트 중 내가 손가락에 꼽힐지도 모르겠다.  난 테이블에 스크레치가 많이 나 있어도, 바꿔 달라고 한다. 안되면, 커버라도 헝겁으로 가리기라도 해달라고 한다. 특히, 유아동 책은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잡는 경우가 많은 데, 책만 잡히지 않고, 테이블 상판도 같이 잡힌다. 테이블에 시선이 많이 꽂힌다. 또 전 방송에서 음식물을 판다거나, 화장품을 판매한 경우에는 테이블에 지저분한 이물질이 제법 많이 묻어있다. 묻어서 굳어 있는 경우도 많다. 난 그런게 이상하게 눈에 너무 잘 들어온다. 누구 시킬 것도 없이, 바로 물티슈를 가지고 와서 열심히 청소한다. 내 상품이 지저분한 테이블 때문에 같이 지저분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다. 내 일 남의 일 따로 없다. 그냥 눈에 보이면 먼저 본 사람이 치우면 되는 거다. 


심지어, 내 옆에 있는 게스트나 호스트 후배도 내 레이다 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스트가 마이크를 살짝만 삐뚤하게 매거나, 마이크 선이 옷 밖으로 많이 나오는 경우 내가 직접 마이크를 만져 주거나, 수정해 준다. 시커먼 마이크 선에 고객의 눈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게스트들의 마이크를 일일히 만져주고, 다시 달아주는 모습을 보고, 스텝들이 선배 왜 이렇게 친절해요 뭐, 이런 말을 하곤 하는데, 친절해서 그런게 아니다. 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다. 카메라 선이 꼴 보기 싫어서, 도저히 눈에 거슬려서 그러는 거다. 

방송 전, 무대 체크는 필수다. 무대 배경색이 뭔지 미리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배경과 의상이 잘 맞는지 고민하고 입고 들어가야 한다. 또 핸들링을 할 때, 가령 사과 방송을 할 때, 재밌게도 많은 스타일리스트들이 빨간 색을 준비해준다. 사과니깐 상큼하게 빨간색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보통 핸들링을 가슴 가운데에서 들고 보여주는 사과의 경우, 옷색깔이 빨강이면, 빨간 사과가 돋보일 수 없다. 옷 속에 그대로 파묻혀 버린다. 


말하랴, 세트 신경쓰랴, 게스트 머리카락이 제대로 딱 붙어 있는지 까지 잔소리하랴, 신경쓸 게 백개는 된다. 그걸 늘 매 방송때 마다 레이터를 지구 끝까지 펼쳐서, 온갖 자잘구레한 것까지 다 간섭(?) 하고 진행한다. 오직 하나 '상품'이 제일 빛나게 하기 위해서다. 


스티브 잡스는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늘 검정색 상의를 입고 나온다. 왜 그럴까? 설마 잡스 형이 돈이 없어서, 매일 같은 옷??

아마, 프리젠테이션의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애플의 신상품이기 때문 아닐까? 블랙 배경으로 진행되는 애플의 프리젠테이션에 늘 빛나는 주인공은 애플 자체여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상품'을 가장 빛나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 흔적이 의상에서도 느껴진다. 


내 의상이, 내 화장이, 내가 들고 들어간 물병이, 내가 차고 있는 시계가, 내 머리카락이, 내가 준비한 판넬이나 소품이, 그 무엇이 되었건, 상품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들은 과감히 청소해야 한다. 상품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역시 버려야 한다. 빛나야 할 것은 오직 상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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