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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디 May 21. 2020

퇴근 후 뭐라도 했더니 사업자가 되어 있었다

디자이너의 사이드 프로젝트



일만 하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어!

그렇게 나는 퇴근 후 문구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사업자가 되어 있었다.






1. 회사일 말고 뭐라도 하고 싶어서

만든 월간 모임 '뭐라도 데이'


나는 프로 계획러 였다. 재밌는 아이디어와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회사일이 바쁘고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프로 계획러. 그러다 회사를 다닌 지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반복되는 야근과 타이트한 일정, 업무에 대한 회의감, 진로 고민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면서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렇게 회사일만 하는 건 재미가 없어..'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팀이었던 용현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회사일만 하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며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어쩌면 그동안 쌓인 응어리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싶지 않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뭐라도 데이’ 모임을 결성했고, 그날 밤 멤버 모집을 위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퇴사하는 동료의 파티와 '뭐라도 데이' 발대식을 함께 알리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뭐라도 데이 발대식에는 총 9명의 직장 동료들이 모였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돌아가며 얘기했다.


유튜브 채널 만들기

연극 치료 준비하기

연남동 오픈 소스 지도 참여하기

회사를 때려치워도 할 수 있는 일 찾기

독립 출판 매거진 만들기

etc...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평소에 문구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나의 취향이 담긴 문구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다. 항상 생각만 했던 일이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만들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우리는 다음 달까지 최종적인 결과물이 아닌 조금이라도 노력했던 결과물을 가져오기로 약속하며 ‘뭐라도 데이’가 시작되었고, 나의 문구 만들기도 시작되었다.



6월~11월까지 진행한 '뭐라도 데이'모임 사진






2. 퇴근 후 본격 문구 만들기


첫 번째 작업으로 그 당시 가장 필요했고 제작 비용이 적게 드는 핸드폰 케이스를 만들었다. 매일 저녁 무조건 한 시간은 책상에 앉아서 나를 위한 작업을 했다. 디자인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한 시간은 앉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안 하고 자면 불안할 정도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만든 핸드폰 케이스를 온 동네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나는 사람들이 호응해주고 피드백해주는 재미에 푹 빠져서 빨리 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졌다. 그래서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실크스크린 원데이 클래스와 실제본 노트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좌) 첫 번째로 만든 'Bread' 아이폰 케이스 / (우) 실크스크린 원데이 클래스



이 모든 작업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콩냥콩양'계정을 만들었다. (이름이 '콩냥콩양'인 이유는 내가 책상에서 문구를 만드는 모습이 '꽁냥꽁냥'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고, 그 당시 우리 닉네임이 다 'oo콩'으로 끝났어서 이에 한 멤버가 '콩냥콩양'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3. 내가 만든 문구 판매하기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만드니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콩냥콩양'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획, 디자인, 제작 모두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이 신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의사결정이 반영된 결과물을 만들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했어야 했는데 '콩냥콩양'문구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작업물을 올렸더니 몇몇 사람들로부터 판매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사실 문의를 했던 사람은 2~3명뿐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고객들이었다. 나는  고객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말 하루 만에 사이트를 만들어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조금 더 결제가 편하고 사업자 등록 없이도 시작 할 수 있는 스마트 스토어팜 사이트를 제작해서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세종예술시장 소소 프리마켓에 참여도 했다.






4. 어쩌다 보니 사업자가 되었다.


인스타그램과 온라인 스토어에 작업을 하나씩 업로드하는 재미는 상당했다. 마치 미술관에 나의 작업을 채우는 느낌이랄까나? 그렇게 하나 둘 작업이 많아지자 오프라인 마켓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다른 오프라인 상점에서 입점 문의 연락도 왔다. 결정적으로, 문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이트 텐바이텐에서 연락이 왔다. 그 순간 내가 성공한 사람이 된 거처럼 너무 기뻤고 신기했다.


나는 바로 입점 의사를 밝혔고 순조롭게 계약을 진행하는 와중에 사업자 등록증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회사원이었기에 '사업자'라는 말이 굉장히 낯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뭔가 행적적으로 처리할 일이 많을 것 같고, 시간과 돈도 많이 들어갈 것 같고 사업의 'ㅅ'도 모르는데 내가 사업자 라니... 하지만 텐바이텐에 입점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일단 사업자등록을 하고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며 겁 없이 사업자등록을 해버렸다. 의외로 너무 쉽고 간단한 절차에 그렇게 나는 계획에 없던 간이과세자 사업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텐바이텐에서 판매했던 상품들






5. 회사일과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에서 균형 잡기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이 어쩌다 보니 '사업자'까지 등록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출퇴근을 반복하는 회사원이었다. '사업자'가 되었다고 해서 내 일상이 변하지 않았다. 텐바이텐에 입점했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 온라인 스토어팜에 항상 주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퇴근 후 만들고 싶은 문구제품을 조금씩 만들어 나갈 뿐이었다.


확실한 건 회사를 다니면서 했던 사이드 프로젝트 '콩냥콩양'작업은 나에게 큰 활력을 가져다주는 활동임에는 분명했다. 회사에서 해소하지 못했던 창작욕구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고, 이것저것 만들어 보면서 다양한 작업 스킬들을 배울 수 있었고, 디자이너 관점뿐만 아니라 마케팅, CS, 생산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하고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다시 회사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콩냥콩양'에서 만든 굿즈들



물론 회사일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란 쉽지 않다. 제한된 시간과 체력이 나의 의욕만큼 따라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균형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나의 경우 회사에서 3~4개월 단위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1~2주 정도 여유로운 시간이 있는데 그때 생산적인 디자인 작업을 하고, 그전까지는 아이디어 스케치 작업을 출퇴근 시 틈틈이 기록해 두는 편이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무조건 일요일엔 노트북을 가지고 카페에 가서 이것저것 나만의 작업들을 계속해나갔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 책상. 지금은 훨씬 더 지저분하다.



나는 지금도 잠자기 1~2시간 전에는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 하고, 매주 일요일엔 나만의 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 이 작은 시간들이 모여 나에게 다양한 경험과 기회들을 주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지금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바로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 일단 시작해 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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