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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Dec 17. 2020

기술의 발전 방향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전 LG 윙 스마트폰이 나왔다가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모를 논란을 일으킨 후에 조용히 사라졌다.

기계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출시 전부터 색다른 아이디어다, 신기하다, 하면서 난리였다. 나는 그에 비하면 평범한 대중의 관점이었기에 처음 모델을 봤을 때부터 의아한 반응이었다. 결국 대다수의 반응은 나와 비슷했던 모양인데 LG 핸드폰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에 가까웠다. 예전부터 LG 폰은 물건 성능은 좋은데 뭔가 아쉬운 이미지로 통했다. 신기하게도 같은 LG전자에서도 가전은 그렇게 잘 나가는데 핸드폰 쪽은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이번 윙만 봤을 때는 예전 내가 썼던 스카이의 후라는 모델이 바로 떠올랐는데, 왜 이 기능을 만들었으며 마케팅 전면 포인트로 내세웠는지 의문이 드는 그런 물건이었다. 스카이 후는 폴더폰인데 바람 인식 기능을 탑재해서 후 하고 불면 화면이 넘어갔던가? 뭐 그런 모델이었다. 당연히 나를 비롯해 대다수의 구매자들은 바람 인식 기능은 물음표였고 원래 스카이 특유의 날씬하고 예쁜 디자인에 반해서 샀다. 이후 그 기능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비슷하다. 본질적 수요라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게 애플의 강점이라고 난 생각한다. 화면이 돌아가고 접히는 특이한 것도 좋겠지만 핸드폰은 그냥 기본 기능이 충실하면 그 다음엔 가볍고 심플하고 예쁘면 된다. 이후의 개발은 같은 성능을 좀 더 저렴하게 만드는 쪽일 것이다.  

혹은 핸드폰 내부 인터페이스가 실제 수요에 가까운 영역이다. 거기의 구성이나 디자인 등을 더 직관적이고 아름답게 바꾼다면 그건 분명 먹힐만한 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괜히 화면이 돌아가고 한개가 더 접붙혀져 있고 한것은... 음... 이게 게임 유저를 노린 건지, 혹은 바람 인식 기능처럼 오로지 기존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건지. 암튼 본질과 수요를 생각해서 만든 제품은 아니구나, 싶다. 명품이란 그런 본질적인 부분을 장인정신을 가지고 획기적으로 멋지게 만든, 나머지 쓸데없는 것들은 싹 제거한 심플한 제품이다.

후나 윙이 나왔을 때 주변에서 농담처럼 얘기했던 것이 왜 이게 나왔는지 회사 내 의사결정 과정을 알거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에서도 비일비재하니까. 단기적 성과 혹은 그럴듯한 보여주기에 집착한 결정권자가 툭 던진 한마디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기묘한 결과가 나오는 사례가 워낙 많으니 말이다.


저런 웃픈 사례와는 별개로 요즘의 디지털 언택트 시대의 기술 발전 또한 가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기술의 발전은 어찌됐든 우리가 사는 것을 개선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게 아니고 그냥 무조건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한 게 더 큰 목적이 되어버렸나 싶을 때가 많다. 핸드폰이나 가전의 성능은 기본적 수요를 만족시키는 수준에 다다른지 오래됐다. 매년 나오는 신제품들을 보면 필수적 기능이 추가된 것이라기보다는 디자인이 좀 바뀌었거나 혹은 신기하긴 한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기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더욱 기분이 묘한 것은 디지털 언택트의 중심에 있는 각종 인터넷, 통신,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이다.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움직이고 활동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많다. 자연스럽고 건전한 즐거움이다. 스스로 해도 좋은 활동인데 요즘 기술의 발전은 그걸 자꾸만 기계로 대체하고 있다. 기계가 그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신기할 수는 있지만 굳이 사람이 해도 괜찮은 영역을 왜 하나씩 없애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 기술이 필요한 것은 사람이 할 수 있고 일부라도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위험하고 너무나 고되서 사람이 하기 힘든 활동을 없애주는 쪽이다.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의료 분야의 혁신이라든지,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 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든지. 기술의 발전은 진정 인류가 행복하게 살수 있는 방향을 향한다는 대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생각인 것만 같다. 최근의 기술 발전은 큰 틀에서의 이상과 목적보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계처럼 변하고 정신적인 공허함과 갈증이 커져도 상관없으니 그런 기술의 발전을 통해 새롭게 부를 창출하고 대중을 몰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넷플릿스 다큐 소셜 딜레마를 보니 이미 알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기분이 묘하고 우울해졌다. 소셜미디어와 통신 기술 발전의 메카인 실리콘밸리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때까지 스마트폰을 비롯한 일체의 매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칠판과 종이책을 사용한 아날로그식 교육을 시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신기술과 문화에 빠르게 뛰어드는 쪽인 것 같아 아쉽다. 주위에 보면 개개인은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큰 흐름을 혼자만 거스를 수 없어 그냥 따라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개개인의 의식이 흐름을 바꾸기에는 아직 무언가 부족한 것일까. 어른들은 그렇다치고 아직 학교도 안 갔는데 언택트와 기계적인 사회 문화에 완전히 적응되어 버린 아이들을 볼 때면 이런 흐름은 더욱 아쉽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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