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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May 01. 2021

음식일기

일본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결혼 후 요리를 시작하면서 여러가지로 재미가 있었다.

원래 음식을 좋아하니까 요리도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난 식탐이 많아서 그런지 요리할 때마다 생각보다 양이 많고 그래서 요리 후의 주방도 폭탄 맞은 것처럼 요란스러웠다. 그래도 이 분야도 경험이 최고인지 몇 년 요리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노련해졌다.

최근 일본의 요리, 음식 테마의 힐링용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니 그 정갈하고 깔끔한 요리 스타일이 계속 도전과제가 되었다. 소량으로 요리하되 깔끔하게, 그리고 한식 위주로 정갈한 반찬을 만들어서 한 끼를 먹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덮밥이나 간편한 반찬 등을 많이 해먹었는데 항상 현실은 드라마 속과 조금씩 달랐다.

쉬워보이는데 참 맘대로 안되는 것 중 하나가 계란찜이었다. 전자렌지로 하든 찜기로 하든 왜 이렇게 잘 안 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최근 빵, 수프, 고양이 드라마를 보고난 후 난 다시 정갈한 밥상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오늘은 찌푸린 날씨 속 우연히 부암동에 갔다가 들어간 맘스키친이 또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정식집이어서 놀라고 또 자극을 받아 저녁에는 요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일본식 계란찜, 두부부침, 버섯볶음, 묵은지볶음이 메뉴였다. 체에 잘 걸러 다시마 육수를 섞은 후 찜통에 달달 쪘지만 10분쯤 지난 후 나는 뭔가 착각을 하고 불을 끈 채 남은 열기로 찌면 완성이 되겠지, 하면서 다른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20분이 지나서 뚜껑을 열어보니 계란찜은 물 상태였다. 그제서야 아뿔싸 싶어서 다시 불을 켜서 20분을 더 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계란찜은 말캉하게 익지 않았다. 그 사이 다른 반찬은 다 식어버렸고 무엇보다 미소된장국을 미리 끓였던 것이 실책이었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그대로 계란찜이랑 먹었는데 물이 흥건한 것이 무언가 개운치 않았다. 얼마나 쪄야 완전히 익는 것일까. 아니면 육수를 너무 많이 넣은 것일까. 사실 한국식 계란찜도 전자렌지와 찜기를 통해 여러번 시도해봤지만 위는 바싹 익고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남는 것은 똑같아서 대체 방법을 알 수가 없다. 아래부터 위까지 곱게 익히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은 다 식은 반찬들과 먹다보니 기운이 빠져서 이제 계란찜은 그냥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포기한 것이 하나 있다. 두유 요거트.

요가원에서 점심에 작은 컵으로 직접 만든 두유 요거트를 주는데 이게 참 담백하고 고소해서 한번 도전해보자고 생각했다. 원장님은 두유에 일반 발효유를 섞어 상온에 8시간이면 된다고 편히 말하시고 인터넷 검색 결과도 똑같았다. 그렇게 첫번 도전은 성공했다. 물론 24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꾸덕하게 요거트가 만들어져 아주 맛있게 잘먹었다. 성공을 바탕으로 난 자신감에 넘쳐 약콩두유 한 박스를 기운차게 주문했는데 그 이후론 요거트가 되질 않는다. 2~3팩씩 계속해서 도전하지만 버리고 또 버리고... 오늘은 마지막 남은 2팩에 발효유를 넣어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며칠을 두었던 용기를 다시 열어보니 요거트는 안되어 있고 청국장의 꼬리꼬리한 냄새만 진동을 하고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이것도 버렸다. 요새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것은 좀 그렇지만 맨 처음 성공했던 요거트가 3월 초였는데 왜 그때 이후로 더 따뜻해진 날씨에 요거트 발효가 잘 안 되는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한동안 도전 못할 것 같다. 진짜 여름이 가까워지면 그때나 다시 해봐야지..

이 모든 것이 일본, 미니멀리즘, 자연, 비건, 뭐 이런 것이 어우러진 음식생활의 도전이었는데 어떨 때엔 기대보다 즐겁고 만족스럽고 어떨 때는 의욕이 싹 떨어지면서 그냥 사먹는 것으로 선회한다. 

그래도 역시 인간에게 가장 본능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음식이다. 식문화는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갔던 맘스키친은 꼭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일본의 작고 예쁜 식당 같았는데 그런 공간과 음식은 따스한 행복을 준다. 난 아무래도 일식보단 한식이 입에 맞는 편인데 한식당도 그렇게 작고 내공있는 곳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요즘 업무 하면서 우리나라의 내실 없는 양적인 팽창, 보여주기, 실적위주의 행정에 진저리를 치는 중이다. 일본이 다 좋고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는 것, 규모는 작아도 내공은 강한 그런 문화는 제발 좀 우리나라도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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