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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Aug 28. 2021

대흥역, 살구다방

따뜻한 취향

경의선 숲길에 위치한 살구다방. 일요일에 안 하기는 하지만 의외로 알게 된지 몇 년 동안이나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난 베이지, 황색 등 따뜻한 계열을 참 좋아하는데 이 곳은 카페의 이름에서부터 따뜻한 색감이 묻어나온다. 게다가 가끔 다른 매체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 가보지 않아도 주인의 취향이 잘 우러난 따뜻한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도자기와도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 전시도 있고 나오는 그릇도 멋지다고 들었다.

드디어 오늘 이곳에 왔다. 조용하고 흐린 토요일. 숲길을 바라보는 길가에 위치한 다른 곳들과 달리 살구다방은 골목 안쪽으로 하나 들어가 완전히 반대편에 숨어 있다. 조금 일찍 도착을 해서 그런지 카페는 손님 없이 비어 있었다. 골목 안쪽이라 그런지 오히려 넓고 여유있는 매장에 작은 도기 전시 코너도 있고 테이블 좌석도 많이 있었다. 커피를 내리는 카운터 쪽은 마치 카모메 식당 같은 작고 알찬 주방을 연상시켰다. 듣고 상상했던 대로 따뜻하고 알찬 공간이었다. 커피와 차를 한 잔씩 주문하자 예쁜 도자기 컵에 음료가 나왔다. 골목길이지만 의외로 바깥은 햇빛과 작은 여유공간의 식물들이 어우러져 싱그러운 느낌이었고 공간이 주는 따뜻하고 넓은 느낌이 참 편안하고 좋았다. 주인의 작업공간으로 보이는 한 쪽 테이블에는 건축 관련 서적이 보였고 그저 음료만 파는 공간이 아닌 다른 컨텐츠가 여기저기 어우러진 듯하여 더욱 좋았다.



우린 맨 안쪽 테이블에 앉았는데 뒷쪽에는 근사한 오디오와 함께 작은 서가가 있었다. 두 칸 짜리 작은 서랍장에 한쪽은 원서, 한쪽은 한국 책들이 쌓여 있었는데 우연히 제목들을 보다보니 하나 같이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아닌가. 주로 에세이와 공간, 디자인, 안목에 대한 책들이었는데 요즘 내가 관심가지는 것들과 대부분 일치했다. 취향이 맞는 공간을 만나면 참 반갑다. 난 책을 네댓권을 뽑아 놓고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 중 가장 살고 싶은 도시, 포틀랜드에 관한 어떤 일본인이 쓴 책을 읽었다. 살기 좋은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포틀랜드는 여러번 들어본 적이 없는 도시였으나 그 책에 나온 내용들은 평소 이런 저런 곳에서도 들었고 나도 혼자 느꼈던 부분으로 매우 공감이 갔다. 지금 인구 밀집과 생각없는 개발로 혼잡한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여기도 애초 도시계획이라는 어떤 철학이나 방향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예전 프라이부르크에 놀러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역시 이런 도시를 만들려면 일단 좀 작아야 하는 걸까.

이용시간 2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숨어있는 곳이었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아지트로 삼고 싶지만 이미 유명해진 것 같았다. 멀리서 찾아 온 것 같은 손님, 동네 단골로 보이는 손님 등이 다양하게 어우러졌다. 우리는 숲길을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갈수록 소중해지는 녹지 근방에는 역시 멋진 공간들이 먼저 생겨나고 있다. 비로소커피도 좋지만 살구다방도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늦게 오게 된 것이 아쉬웠던, 책 리스트가 좋아 더욱 호감이 갔던 곳. 요즘은 사진 잘 나오는 공간이 대세이긴 하지만 역시 공간의 지속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주인의 컨텐츠에서 쌓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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