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램이랑 떠는 야밤의 수다는 하나의 리추얼이다.
아이 집에서 야경을 보면 진짜 예쁘다. 서쪽은 지평선이 펼쳐져 있는데 동쪽은 높은 빌딩들이 우뚝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빌딩들은 미국 빌딩답게 고풍스러운 애들도 섞여 있다.
창문 앞에 바짝 캠핑 체어 2개 갖다 두고 앉아서 담요 덮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TV에서 본 내용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미래의 가족계획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솔직히 내가 애 보느라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이 짓을 손주 나오면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져서, 그리고 내가 읽던 책에서도, 두 아이의 엄마로 나오는 변호사가 애들 케어하느라 승진도 거절하고 다른 회사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하고 같이 회사를 차리자는 동료의 제안도 거절하고 칼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들 다 케어한 이후 야밤에 노트북 들고 일하는 장면을 읽고 있노라면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이런 일들은 스웨덴에서조차 여자의 몫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작가가 스웨덴 사람이었다.). 아이에게 애 낳지 않아도 된다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했다. 사랑하는 내 딸내미에게 그런 힘든 짐을 지워주기가 싫었다. 어쩌면 손주 보기 싫다는 바람도 조금 들어 있었을 수도 있다. ^^;; 그런데 이 눔의 지집애가 "내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었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난 애를 낳을 거야. 그것도 둘 이상 낳을 거야."라고 한다. 에혀~ 그러면서 벌써부터 애들 키우려면 대도시에서 여러 문화적인 자극을 주며 좋은 교육환경에서 키우고 싶은데, 그만큼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한다. 벌써 시작이다. 이궁...
암튼, 자기 전에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누고 잠자리에 들어 손을 꼭 붙들고 2차 수다를 이어 나가다 잠이 든다. 한국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여유다. 평일에는 퇴근해서 세수하고 이 닦고 꽃에 물 주는 등 간단한 집안일 몇 개 마치고 내일 입을 옷을 꺼내는 등 바쁘다. 얼른 자야 다음날 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은 다음날 출근 부담이 없다는 핑계로 유튜브를 보다가 새벽 1~2시를 훌쩍 넘기고는 있는 후회, 없는 후회를 하며 주말을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런 취침 전 의식을 치르고 잠자리에 들다 보니, 하루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있다. 그럼 다음날도 보람차게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일기를 쓴다거나 스트레칭을 한다거나 명상을 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리추얼은 아니지만, 내게 정갈한 에너지를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리추얼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