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고향에 다녀왔다. 때마침 전국을 떨게 했던 경북지역의 지진이 일어나던 찰나였다. 늘 감사하게 생각했던 초고속 열차가 안정상 감속과 지연을 번갈았고, 동대구역에 예상보다 50여 분을 늦게 도착하는 기록을 갱신했다. 마침 국산재난영화인 '터널'까지 개봉했던지라, 진짜 '터널' 속에서의 20분은 나를 들었다놨다하기 충분했다. 괜히 불안감을 떨치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통신이 두절된 걸 깨닫곤 더 부들부들!
짧게나마 손바닥 앞뒷면과 같은 생과 사의 이치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특히나 근래들어 직장에서 고초를 겪는 일이 많아 더욱 와닿았는 지도 모른다.
때로는 딱히 가진 것이 많지도 않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는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는 지 답답할 때가 많다. 반대로 딱히 가진 것이 없기에, 그나마 쥐고 있는 것을 놓기가 어려운 것일까.
'노동'이란 것이 그 참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나의 만족도와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요즘 젊은 것들'의 하나로서 '자아실현'에 그 값을 크게 매기고 있다. 그리고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안타깝게도 내 관련 욕구를 하나도 채워주지 못한다. 게다가 2순위의 가치인 '적성'과도 마치 평행선을 달리듯 좀처럼 마주칠 기회가 없으니 더욱 통감할 노릇이지.
신입시절, 밟고 내려다본 현실이 너무도 까마득해 질려버린 나를, 또다른 내가 이렇게 이해시키지 않았던가.
1) 아직 업무를 잘 몰라서 그럴 것이다.
2) 1년은 지나봐야 그 조직을 논할 수 있다. (1년 이상 경력기입가능의 그럴듯한 말!)
다 지나고 느낀 건, 역시 첫 느낌대로 찍어야 정답이라는 것이다.
어영부영 2012년 입사자는 어느덧 2016년 가을과 환절기 감기를 맞았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거라 생각한 회사생활은 날이갈수록 어째 모질어지는 것만 같다. 눌리고 치이다 얄팍해진 멘탈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기도 하고, 그럴때면 가장 위험하다는 '우울감'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한때 적정을 유지하던 나의 자존감이 어느덧 위험지수까지 내려갔음을 느꼈을 때, 나는 내가 남들앞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이 되면 마치 내가 절벽끝에 서 있는 듯 아찔하게 느껴졌고, 머리속이 새하얘졌다. 결국 그렇게 나오는 말은 두서없이 허공에 뿌려져 증발돼 버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느끼는 모멸감과 스스로에 대한 책망은 나를 작고 작게 만들었다. 엄지만큼 작아진 나는 회사생활이라는 거대한 메이지를 뛰어다니며 또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하고 싶었던 일이 분명했고, 당연했던 순간이 너무 그리운 것은 그냥 넋두리가 아니다. 사회구조가 어떻고 나라 경제가 어떻든, 사실 불안감과 두려움에 내 스스로 옭아맨 부담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도 결국엔 나다.
미친듯이 벗어나고 싶다고 뛰쳐나갈래다가도 결국 내 옷자락을 힘껏 움켜쥔 미련이 세상 아련하게 부모님도 떠오르게 했다가, 통장잔고를 떠오르게 했다가 한다. 지금 당장은 미련 털어내고 지옥이라는 회사밖으로 뛰어나갈 용기가 마땅치않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내가 꾸짖음과 책망 대신 잃어버렸던 꿈과 용기를 가져다 줄 날이 오겠지. 그때는 울분에 내던지는 사표가 아니라 내 인생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귀한 디딤돌을 주심에 감사하는 그런 감사인사와도 같은 사표가 되길 바란다.
새벽 한 시 반. 내일도 출근해야하는 프로출근러 모두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