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뉴질랜드

<14박 15일 뉴질랜드 여행기>

by 은주

‘호주보다 뉴질랜드가 좋아.’

그 말 한마디가 27년 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지였던 호주는 감동을 넘어, 살고 싶은 나라였다. 인적 없는 바닷가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곱고 부드러웠다. 숨을 쉴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켠 듯한 맑은 공기가 폐로 들어왔고 천연 비누의 향기는 그 어떤 브랜드의 향수보다 향기로 웠다. 그런 호주보다 더 좋은 곳이 뉴질랜드라니 당장 가보고 싶었다.


스물셋, 돈은 없고 호기심만 왕성한 나이였다. 당장은 할 수 없더라도 계획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27년 만에, 그 여행 계획이 드디어 실천의 단계로 들어섰다. 런던에서 무려 18,939km 떨어진 나라, 뉴질랜드 출발했다.


런던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 계획을 세웠다. 차디찬 겨울바람에 손이 시린 한국을 지나, 따뜻한 나라로의 겨울 여행을 기대했다. 하지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기대만큼 쨍하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달래준 건 오클랜드에 사는 친구의 문자였다. 하루 신세를 지고 남쪽으로 여행할 예정이었다.


‘언니! 점심 김치찌개 좋아?’

‘너랑 같이 먹으면 다 좋아!’


낯선 나라에서 받은 누군가의 문자에 마음이 뭉클했다. 문자에도 온도가 있다. 결혼 후 뉴질랜드로 이사한 그녀와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

15년 전, 와인 잔을 앞에 두고 부어라 마셔라 인생 고민을 나누던 우리는 이제 40대 중반과 50대 초반이 되었다.


우리는 둘 다 나이 드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다만, 건강하지 못해 제대로 놀지 못하게 되는 게 두렵다. 영양제를 한 움큼 챙겨 먹으며, 늙더라도 재미있게 살자고 마주 보며 웃었다. 늙음은 선택할 수 없지만 행복하게 사는 건 선택할 수 있으니까.


기분 좋은 포만감에 졸음이 쏟아졌다. 런던에서 보던 것과 닮은 우중충한 먹구름 뒤로 빗줄기가 쏟아졌다. 친구의 집은 바닷가 바로 앞의 집이다. 바다는 걷는 대신,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기로 했다. 시차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햇빛에 바싹 말린 침구에서는 기분 좋은 향이 났다.

'행복하다.'

가수 윤종신이 “행복하면 작사가가 안 된다”라고 했던가. 15년 만에 만난 친구. 27년 만에 이루어진 계획. 너무 행복해서 이 뉴질랜드 여행이 심심한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내 모습에 빙그레 웃음 지으며 잠이 들었다.

20251231_203901.jpg 친구 집 앞 바닷가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