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호빗마을-호빗 튼

<14박 15일 뉴질랜드 여행>

by 은주

초록색 버스에서 내리니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가 길 양옆에 있었다. 그 길을 지나면 짧은 칠보 반바지 차림의 프로도가 “You’re late!”(“늦으셨어요!”) 하고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조금 더 길에 들어서자, 내 키만 한 둥근 초록 대문이 나타났다. 그 위의 파란 대문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 위로 쳐다보니 저 멀리 보이는 초록 대문 집이 단번에 프로도의 집임을 알았다.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반지의 제왕 속 호빗 튼 이었다.


20여 년의 세월을 20초로 만드는 추억의 힘. 그것이 바로 영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기억은 나를 캐나다 뉴 웨스트 민스턴의 허름한 중고 가게로 데려다주었다. 같이 살던 캐나디안 프렛 메이트 로리의 취미 생활 중 하나가 중고 비디오 수집이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가게에서 개당 2~3달러쯤 하던 반지의 제왕 1편 비디오를 집어 들었다. 영어 연습 겸 고른 영화치고는 무모한 선택이었다. 지역 이름조차 사전 지식 없이 보게 된 영화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첫 장면, 호빗들이 사는 마을의 풍경만큼은 유독 인상 깊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열 번 넘게 본 작품이 되었다. 직장 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쯤 떠났던 캐나다에서 만난 영화 한 편. 나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딱히 되고 싶은 것은 없는, 마구 흔들리는 20대 후반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반지의 제왕은 위로가 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가장 반짝였던 나의 20대를 함께한 영화가 되었다.

상상의 호빗 마을을 현실로 옮겨 놓은 듯한 알렉산더 농장(Alexander Farm)은 영화세트장이 아닌 실제 농장이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화 <반지의 제왕>의 장소 섭외자였다.

촬영은 겨우 8일. 헬리콥터를 타고 촬영 장소를 물색한 수십일에 비해 짧은 기간이다.

내부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호빗 집안 내부의 작은 소품들을 완성하기 위해서 10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가이드가 말하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촬영 장소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8일간의 영화 촬영지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새삼 놀라웠다.


런던에서 뉴질랜드까지는 19,939킬로미터. 비행기 연료의 한계로 한 번에 갈 수는 없다. 경유를 포함해 28시간의 비행, 그리고 다시 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호빗 튼.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이곳을 발견한 로케이션 매니저와, 호빗 튼 을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해 준 수많은 소품 담당자들의 노력으로 나의 또 다른 추억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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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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