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케아 가구를 타고

by 은주

“이걸 우리 아들이 조립했다고?”

완성된 TV 서랍장 사진을 본 이안 어머니의 첫 반응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아들은 손으로 하는 일에는 소질이 없고, 그런 일을 싫어한다고 비밀인 양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완성된 가구만 산다고 덧붙였다. 결국, 나에게 자신이 손재주가 있다고 자랑하며 애교를 부리던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주말에 뭐 해?’

목요일에 문자가 왔다. 이 주일 전 도둑키스를 하려다가 나의 철벽 방어에, 머리카락에 키스하고 민망한 얼굴로 돌아간 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본인도 부끄러웠겠지.

‘이케아 가구 조립해야 해.’

당시 나의 취미 중 하나는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적당한 이케아 가구 조립이었다. 약속이 없는 주말에, 가구 조립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꿀맛이었다.

‘나도 조립 잘하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그가 도와주려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나만의 공간에 낯선 이의 방문이 달갑지 않아 거절했다. 이안은 더 이상 질척대지 않고, 필요하면 연락하라 했다. 가구는 완성되었는데 서랍이 열리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해결 방법이 없었다. TV 선반 겸 케이블 정리함으로 쓰려고 했는데 TV만 올려 두고 써야 할 것 같았다. 난감한 상황에 그의 문자가 왔다.

‘가구 조립은 잘 되고 있어? 다 했으면 펍에 가서 한잔할까?’

웬만한 남자들은 가구 조립을 잘할 거라는 선입견으로 ‘서랍이 안 열려, 와서 도와줘’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는 처음 만날 때 입었던 쑥색 야상 점퍼를 입고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집 앞에 나타났다. 수리공이라도 되듯이 공구함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 앞에 서 있는 모습에 일단 안심은 되었다. 수동 드라이버로 한동안 이리저리 고치더니 뭐가 잘 안 되는지 가구를 보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 인간, 이케아 가구 조립해 본 적이라도 있는 거야?’

안심이 점점 의심으로 변해갔다. 여름도 지났는데, 빡빡 밀은 뒷머리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애쓰는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잘 안되면 그냥 둬.”

이걸 해결 못 하면 앞으로 나와의 만남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지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루기 쉬운 전동 드라이버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마침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서랍을 ‘짠’ 하고 열어 보였다.

“와 대박! 너무 잘한다. 이안씨 아니었으면 난감할 뻔했어!”

박수를 쳐가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신이 나서 그가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아까 보니까 화장실 휴지걸이도 설치해야 할 것 같아.”

“아…니, 괜찮아. 그냥 둬.”


소질도 없어 보이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되지 않아 몇 번을 사양했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욕실 벽에 손가락 네 개가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을 뚫었다. 구멍이 너무 커서 휴지걸이는 헐거웠고, 결국 그는 맞는 공구를 찾아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간, 퇴근 후 참새 방앗간처럼 우리 집으로 왔다 갔다 했다.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 휴지걸이는 드디어 제자리에 붙었다. 사용해 보니 은근히 편리했다. 몇 년 후 수리공을 불러 다시 손을 보긴 했지만, 그가 내게 손으로 만들어준 첫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었다.


이안은 손재주는 엉망이었지만, 내가 만난 영국인 중 암산은 가장 빨랐다. 세금 계산이 자동으로 되는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어 무료로 나눠주거나, 투자 분석 자료를 만들어 이베이에 판매하는 걸 보면 천재 같았다. 그러다가도 올리브 뚜껑 하나 제대로 못 따는 모습을 보면... 음, 천재는 아닌 걸로 결론 내렸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매일 얼굴을 보다 보니 정이 들었다. 소파와 침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케아 가구는 혼자서도 문제없이 조립했지만, TV 서랍장만은 유일하게 실패한 가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연이란 예상한 길이 아닌, 약간은 비틀린 괴도를 타고 온다.

인연을 기다리는 싱글이라면 매일 같은 길로 퇴근하지 말고, 가끔은 새로운 길로 돌아가는 시도를 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어느 골목에선가 어설프지만 이케아 가구를 같이 조립할 그가 기다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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