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10년 후의 가치가 얼마인지 알아?"
무슨 말인가 싶어 이안을 바라보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매달 7.99파운드씩 넷플릭스에 내는 돈, 그게 10년 후 얼마가 되는지 알아?”
‘이 인간 또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
반쯤 관심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였다. 한국 드라마를 함께 보면 그가 더 많이 한국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될 거라는 기대에, 넷플릭스를 구독했다. 첫 드라마로는 <미생>과 <응답하라 1988>을 연달아 봤다.
`안돼` `기다려` `왜`
그도 짧은 문장을 알아듣고 따라 하며 꽤 즐거워 보였다. 그런데 또다시 스프레드시트를 열고 무언가 계산하기 시작했다.
“41,000파운드야. 그러니까 매월 7.99파운드를 주식에 투자해서….”
“아, 시끄럽고. 그래서 보지 말라는 거야?”
직장이든 집이든 일상을 영어로 생활해야 하는 나에게, 한국 드라마는 말 그대로 휴식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의 말이 ‘보지 말라’는 뜻으로 들려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너의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아. 너한테는 41,000파운드만큼의 가치가 있는 거니까 마음껏 즐기라고.”
‘뭐래.’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학! 씨! 가 목언저리에 맴돌았다.
`너 뭐 알어.. 엉. 남의 나라 말이라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하고 사는데..`
속으로 덧붙여 봤다.
MBTI에 따르면 나는 ‘대담한 통솔자형’, 그는 ‘용의주도한 전략가형’이다.
그는 나무만 보느라 숲을 못 볼 때가 있고, 나는 숲만 보느라 디테일을 자주 놓친다. 가끔은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외향적(E)이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런던에 나가야 했다.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친구들과 뮤지컬이나 한국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전망 좋은 <스카이 가든>이나 고급스러운 <샤드>에 가서 와인 한잔 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이안의 계산으로 따지면 10년 후 400,000 파운드의 가치를 나는 하루 밤에 날린다. 10년 후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는 내향적(I)이라 런던 나들이나 공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스프레드시트를 붙들고 씨름하는 걸 더 선호한다. 그래도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며 나의 취미 생활을 존중해 준다. 자신의 몫까지 즐기고 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소비 패턴도 달랐다. 그는 필요하지 않으면 아무리 세일해도 사지 않았고, 필요한 건 비싸도 샀다. 집에 같은 제품이 두 개 이상 있으면 근처 Oxfam이나 Save the Children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나는 세일할 때 사두면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싶어 쟁여두었다. 그는 나에게서 ‘할인할 때 사면 더 절약된다’는 법을 배웠고, 나는 그에게서 ‘집에 이미 있는 게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소비’를 배웠다.
함께 한다는 것은 다름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언어도, 성향도, 소비 패턴도 달랐지만 싸움이 없었던 건, 아마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만났기 때문인 듯했다. 우리는 싸우는 대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