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사고가 났다. 오토바이가 지그재그로 달려오다 교차로에서 대기 중인 내 차를 박았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몇 미터를 나가떨어졌고, 피투성이가 되어 벌떡 일어났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누워 있는 그가 나를 향해 욕하는 건지, 아파서 욕하는 건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온갖 소음이 들려왔지만,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려 밖의 상황이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조심스레 차 문을 열고 나가니 도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두 동강 난 오토바이와 사고 잔해들로 인해 정체되어 있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었지만,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었기에 “So sorry”를 연발했다.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뒤차 운전자가 말을 걸자,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도 났다.
“119야? 아니, 911인가? 아니다, 999가?”
당황스럽게도 응급 번호가 119부터 생각났다. 목격자는 이미 구급차를 불렀고, 목격 증인도 해주겠다고 명함을 주며 자리를 떠났다. 아는 사람도 아닌데 귀찮은 증인 역할을 자처하니, ‘개인주의 영국인’이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나의 편협함이 부끄러웠다.
경찰이 도착해 사고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가 끝날 무렵, 또 다른 경찰이 와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하자고 했다. 겁이 났다. 그 와중에 이안은 계속 전화를 했다. 연락이 안 되니 카톡을 보냈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저녁 시간에 내가 도착하지 않자 걱정하고 있는 건 알지만, 경찰관 앞에서 전화를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목격자가 증언을 해주고, 오토바이의 과실을 증명하는 서류 한 장을 받고 풀려났다. 손발이 후들거리며, 내가 차를 운전하는지 차가 나를 끌고 가는지 모를 때쯤 집에 도착했다. 이안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늦은 이유를 다그치려다가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바로 수그러들었다. 반쯤 찌그러진 차량이 모든 것을 말했다.
"왜 전화하지 않았어?"
낯선 질문이었다. 가족이라는 새로운 울타리가 생겼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혼자 해결하고 온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서운해했다.
10년 된 쑥색 혼다 시빅을 사서 10년을 몰았다. 내 차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다. 겨울 아침엔 성에를 제거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고, 가끔 혼자 있는 쓸쓸한 밤에는 배터리가 방전됐는지 ‘뿡뿡’ 울어대는 애물단지였다. 하지만 영국에서 산 나의 첫 차였다. 가족이 되었다는 의미로 ‘동주’라고 불렀다. 은주 동생 동주. 김춘수 시인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처럼, 이름을 붙인 모든 사물은 숨을 쉬는 하나의 인격체가 된다. 동주는 그렇게 쉽게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되었다. 운전석이 반대인 영국 시골길을 한국처럼 운전하다 마주 오는 차에 간담을 쓸어내린 기억, 같은 장소를 계속 돌다 음주 차량으로 오해받아 경찰에 끌려갔던 동주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나를 지켜주던 그 차는 이제 노쇠해졌고, 결국 병원도 아닌 영안실로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깜짝 선물로 잘생긴 컨버터블 폭스바겐 EOS를 사 왔다. 미소를 숨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역시 악어의 눈물이었다고 놀렸다.
이안에게는 쑥색 야상점퍼가 동주 같은 존재였다. 첫 만남부터 이케아 수리해 줄 때까지 줄기차게 입고 다닌 옷이다. 전 직장 동료 E의 30세 생일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영국은 60세 생일뿐만 아니라 30, 40, 50세 생일도 의미 있게 보낸다. 여자 4명이 런던에서 오후 5시에 만나 샴페인 1병, 와인 2병, 칵테일 2잔, 테킬라 16잔을 마셨다. 클럽에서 춤을 추며 놀다 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걱정된 이안이 클럽 밖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날도 소매 끝이 낡고 색이 바래서 내다 버려도 아무도 안 입을 법한 쑥색 야상점퍼를 입고 왔다. 클럽 주변의 남자들은 값이 제법 나갈법한 실크 소재의 양복 차림이나 반짝이는 클럽 복장을 했다.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들 사이에 그는 영락없는 런던 택시 운전사 같았다. 막 출발하려는데, 일행 중 한 명이 클럽에 가방을 두고 나왔다며 다시 클럽으로 들어갔다. 나와 동료들은 따뜻한 차 안에서 졸고 있어 밖에서 무슨 실랑이가 벌어졌는지 몰랐다. 술 취한 중국 남자 두 명이 이안에게 다가왔다.
"북런던이요"
"택시 아닙니다"
이안은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취객들이 승차 거부라고 생각했는지 이안을 가리키며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소리쳤다. 몇몇 사람들이 소동을 구경하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차별을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드러내 놓고 표현하는 것을 경계한다.
“내 약혼자가 한국 사람이고, 전 직장 동료도 다 한국 사람인데, 이래도 내가 인종차별주의자야?”
이안은 울그락 불그락 되어 앞문을 열어 보여주며 반문했단다. 다음 날, 그 에피소드에 나는 박장대소했다.
“그러니까 어두운 곳에서 택시 운전사 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 쑥색 야상점퍼 좀 버리면 안 돼?”
내 약혼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그 옷차림이 초라하게 보일 수 있다는 내면의 생각이 계속 자리 잡고 있었고 그걸 표현해 버린 것이다. 그의 옷장에는 괜찮아 보이는 옷들도 많은데 왜 굳이 그 옷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변덕이 심한 영국 날씨에 자신을 보호해 준 20년 지기 친구 같은 옷이라고 말했다.
사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헤어짐이 어렵다.
며칠 후, 이안은 그 옷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아이도 아닌데 잃어버렸을 리 없다는 생각에 찾으러 가자고 했다.
“네가 좋아하는 옷이잖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생각해 봐. 내가 찾아 줄게.”
“괜찮아. 어차피 네가 마음에 안 들어했잖아” 그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겉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하고, 그 옷을 버리자고 말했던 게 미안했다. 나는 그에게 20년 지기 친구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막 입을 수 있으며 세련된 느낌을 주는 남색 점퍼를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