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날 정원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줄넘기를 왜 해? 어디 서커스 나가?”
데이트하며 매일 챙겨 먹던 저녁에 몸무게가 늘었다. 쌩쌩이를 선보이니 그는 박수까지 쳐가며 즐거워했다.
“내기 한번 할까? 한 번에 많이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저녁 식사 당번을 한번 시켜보려고 은근히 내기를 제안했다.
“난 줄넘기 못해.”
“줄넘기를 왜 못해? 학교에서 안 배웠어?”
“응, 안 배웠어. 그걸 왜 꼭 배워야 해?”
영국에서는 체육 시간에 줄넘기로 시험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줄넘기를 아예 배우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초등학교 시절, 줄넘기 시험을 앞두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혼자 남아 연습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운동신경이 없었던 나는 어릴 적 줄넘기를 하며 자주 울었다. 지친 마음을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며 눈물을 훔쳤던 그 꼬마 아이의 절망이 떠올랐다. 영국에서 태어났다면 애초에 배울 필요조차 없었을 줄넘기를, 마치 인생의 전부인 양 붙들고 애썼던 그 시절. 돌아보면 안쓰럽고도 짠한 마음이 들었다.
줄넘기 외에도 이안은 ‘학원‘이란 단어를 생소해했다.
'대학을 가려는데 왜 학원을 다녀?'라는 질문은 나를 당황시켰다.
“그럼 어디 가서 공부해?”
“집에서 공부하지. 학교 수업받은 걸로 스스로 공부하지”
물론 영국도 일대일 개인 레슨이나 튜터가 있다. 하지만 정규 교육 후 한 교실에 많은 학생을 몰어 넣고 배우는 학원 시스템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왜?”를 외친다. 대화를 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목적 없이 가는 대학이 현재의 삶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가? 과연 행복한 삶일까?'
영국에서 일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사람이나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에 나온 사람이나 급여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보다는 그 사람의 실제 경력과 업무 능력이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물론 특정 직업군의 경우 자격을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시작 급여에 큰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MLW (Minimum living wage), 최저 임금이 한국보다 높은 이유도 있겠지만 고액 연봉의 40%, 45% 대의 높은 소득세율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을 배움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이다.
나에게 한국말을 배우던 전 직장 동료 그레이엄의 말이 떠올랐다.
‘영어가 전 세계 공용어가 되다 보니,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속에서 자신들이 더 게을러졌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해서 삶이 더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이 배웠다고 해서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줄넘기를 못하고, 가구 조립도 잘 못해도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이안을 보면,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배웠고 잘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답게 삶을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 MLW (최저임금) 2025년 기준 12.21파운드 한화로 약 2만 2천500원(환율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