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아도 같이 살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결혼해 보니까요, 20%만 맞으면 살 수 있어요. 저희 아버지는 50년을 넘게 사셨는데도 ‘너희 엄마랑 진짜 안 맞는다’라고 아직도 얘기하세요.”
고민하는 나에게 친한 직장 후배가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는 고민스러울 땐 절대로 안 되는 두 가지를 골라서 이안이 그것에 해당하는지 확인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TV 속 외국인들은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말도 잘했다. 특히 요즘처럼 K-Food, K-Pop 등 넘쳐나는 K 열풍 속에서 한국을 모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 주변의 한국 여자와 결혼한 영국인들은 한국말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한국 음식을 좋아했다. 이안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알게 되면 금방 한국어도 배우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을 거라 생각했다.
데이트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나고, 처음 가졌던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시들해졌다. 한국어책은 책장에 곰팡이가 슬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음식은 여전히 국물 요리는 못 먹고, 간장 게장은 무섭다고 한다.
남의 집 신랑들은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한국과 관련이 있었다.
이안은 나를 통해 한국을 본다. 그런 사람에게 왜 김치찌개를 못 먹냐, 왜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하냐고 다그치는 건,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뛰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1년 정도 같이 살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20대였으면 엄마는 결혼 전 동거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겠지만, 늦은 나이의 연애는 무엇이든 용서가 된다. 가끔 사람들이 정해 놓은 때를 놓치는 것은 불필요한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좋은 점이 있다.
2019년 5월의 어느 날, 그는 내게 청혼했다. 특별한 레스토랑도, 영화처럼 꾸며진 이벤트도 없었다. 우리는 한국 여행 중이었고 그의 청혼은 다분히 현실적이었다. 엄마 집 거실, 반쯤 펼쳐진 여행 가방 옆에서, 그는 허공을 향해 “윌 유 메리 미?”를 외쳤다. 그 순간은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는 내가 웃겨서 좋다고 했고, 웃기면서도 귀엽다고 했다.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내가 특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심장이 떨릴 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수록, ‘이 사람이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루하루 함께할수록 괜찮아지는 사람.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사람. 그건 내가 바랐던 사랑의 모양과는 달랐지만, 더 단단하고 진짜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누군가는 심장이 터질 만큼 좋아야 결혼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방송인 김제동이 이런 말을 했다. “심장 떨리는 사람과는 심장 터져서 못 산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결혼은 뜨거운 감정의 정점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르는 길을 운전할 때마다 예민해졌고, 내게 내비게이션을 읽어 달라고 했다. 결혼하자마자 정년퇴직을 꿈꾸는 이 남자는, 늘 한 템포 느리고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보여주기보다 내면을 더 가꾸는 남자. 나는 그 다름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편안하게 느껴졌다. 끝없이 나와 닮은 사람을 찾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혼은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키워가는 일이다. 우리는 그 용기를 조금씩 배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웃으며, 어떤 날은 싸우기도하며. 그렇게 서로에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