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5월 20일, 결혼식 날짜가 새겨진 하객 선물용으로 준비한 와인잔과 초콜릿 박스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오월의 신부’가 되고 싶다는 환상은 환장으로 바뀌었다. 청혼 이후 꼬박 357일을 기다렸다. 옷장엔 3개월 전 구입한 웨딩드레스와 예식용 구두, 그리고 세 벌의 브라이드 메이드용 드레스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하늘도 너무하지. 마흔 넘어서 겨우 결혼 좀 해보겠다는데, 이게 전 세계가 나서서 막을 일이야?”
결혼식 들러리를 서기로 한 친구가 내 기분을 풀어주려 농담을 건넸지만, 이미 김 빠진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전 지역 봉쇄 조치가 여러 차례 내려졌다. 호텔, 식당, 상점 등은 영업 중단이 되었고, 강아지 산책을 제외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우리가 예약한 윈저성과 템스강이 보이는 Sir Christopher Wren 호텔도 영업 중단 대상이었다. 이후 백신의 개발과 보급으로 봉쇄 조치가 점차 완화되었고, 50명까지 모임이 가능해졌다.
“51년을 기다렸으면 많이 기다렸다.”
이안의 아버지는 자가격리가 필요한 외국 입국자를 제외한 영국 친척들만 초대하여 결혼식을 치르자고 했다. 온 가족이 참석하지 못하는 나를 위로하려 결혼식 비용 전액을 수표로 보내주셨다. 남들은 자녀를 대학에 보낼 나이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올리는 초혼이었기에 양가 친척들 모두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여기는 듯했다.
결혼식의 색상은 ‘바이올렛’, 테마는 ‘여행’이었다. 각자의 여정을 즐기던 남녀가 만나 남은 여행을 함께 떠난다는 의미였다. 초대장은 여권과 탑승권 모양으로 제작되었고, 하객 식사용 테이블은 번호 대신 같이 여행을 다녔던 나라 이름이 배치되어 있었다. 꽃, 케이크, 음악, 날씨가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날이었다. 자가격리 10일을 감수한 엄마, 언니, 조카 한 명만이 예식을 위해 먼 길을 왔다. 빈 좌석은 이웃들이 채워주었고,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은 Zoom으로 예식을 함께했다. 모니터 화면 너머로 웃고, 박수 치고, 눈물짓는 얼굴들이 보였다. 감정이 없는 기계가,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하고, 눈물 나게 하는 건 그 안에 담긴 마음 때문이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축복은 더없이 가까웠다. 그들이 미리 보낸 영상 메시지에 친구가 번역을 입혀주었다.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축하 메시지 영상이 상영되었다.
한동안 네잎클로버만 찾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행운의 상징처럼 느껴졌으니까. 세잎클로버는 천지에 널려 있었지만, 네 잎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세 잎 중 한 잎을 떼어, 테이프로 붙여 네잎클로버를 만들었다. 일기장 앞에 붙어 있는 클로버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행복했다. 그 후 나는 ‘행운’보다는 ‘행복’에 더 큰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안은 세잎클로버 같은 사람이다. 완벽해 보이는 네잎클로버의 행운보다는 천지에 널린 세 잎 클로버처럼 평범하지만 나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혼자 늙고 싶지 않다’라는 싱글 탈출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5년 만에, ‘둘이 함께 잘 늙자’로 바뀌었다. 이제 아프면 걱정해 줄 사람이 생겼다. 먼 길을 여행하고 돌아와 영국 땅을 밟는 순간, 꽃다발을 들고 마중 나와 있는 이가 있다. 퇴근 후 어두운 밤, 벽을 더듬거리며 전기 스위치를 찾지 않아도 된다. 겨울날, 방 안에 온기가 돌기까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 늘 혼자인 줄 알았던 삶에, ‘함께’라는 단어가 슬며시 들어왔다. 생각보다 따뜻하다. 혼자일 때는 보이지 않던 길이 펼쳐진다. 매일 비단길도 아니고 간혹 돌길도 나오고 언덕길도 나오리라. 함께 걷는 길이기에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연애 경험도 많지 않고, 연애에 서툰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지금도 내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내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귀차니즘’과 싸워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혼자가 편하고, 익숙한 루틴에 갇혀 살던 내게는 더더욱 그랬다. 남들이 정해놓은 때에 맞춰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언젠가 ‘고독’보다는 ‘함께’라는 단어가 생각날 때, 귀찮음을 이겨내고, 머뭇거리는 연애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연애를 하길 바란다. 늦은 타이밍은 존재할 수 있지만,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그동안 읽어주신 구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제가 번역한 이안의 편지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