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이서방

by 은주

엄마는 이안을 약혼식 전부터 ‘이서방’이라고 불렀다. 한국 여자와 결혼한 조나단은 ‘조서방’, 마크는 ‘마서방’이 된다. 처음에 그는 엄마를 ‘미세스 지’라고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모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암호처럼 서로 간의 호칭을 좋아했다. 그렇게 그들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이안의 어머니를 ‘마가렛’이라 불렀고 그 존칭이 불편해서 되도록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Mum’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영국에서는 상대가 원하는 존칭을 물어봐야 한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면 ‘내가 너의 어머니가 아닌데 왜 엄마라고 부르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동생은 영국인이라 자연스럽게 시어머니를 ‘마가렛’이라고 불렀지만, 이름을 부르는 것이 왠지 무례하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당사자인 시어머니께 직접 여쭤보았다.

“은주가 원하면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도 딸이 없었는데 딸 하나 얻은 기분이다” 덧붙였다.

이안은 아들이 없는 우리 집의 ‘사위’라기보다는, ‘막내아들’ 같은 존재였다. 그는 ‘처형’이라는 호칭 대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드라마에서 배운 단어를 써서 ‘누나’라고 불렀다. 매형들은 그냥 ‘형님 넘버 원’, ‘형님 넘버 투’로 자기 맘대로 지어 부르며 족보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형부들에게 소주를 배우던 어느 날 조금 취한 듯, 소주병을 들고 꼬인 발음으로 “통역해 줘”라고 말했다.

“소주 먹으면 은주가 이 여자처럼 보여요.”

그는 소주병에 붙은 예쁜 연예인 사진을 가리키며 수줍게 농담을 던졌다. 일종의 ‘비어 고글’ 현상, 한국말로 하면 ‘콩깍지가 씌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형부들은 한술 더 떠 농담으로 응수했다.

“우리는 소주 안 마셔도 아내가 그렇게 보이는데?”

“평생 그렇게 비어 고글 쓰고 살았으면 좋겠네.”

엄마는 그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결혼식 주례사처럼 말씀하셨다.

이안은 그렇게 우리 가족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유머는 사람을 더욱 빛나게 하고,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간단한 약혼식을 치른 후, 엄마는 결혼식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영국에 잠시 머물렀다. 영국 윈저 성 근처의 한 호텔을 예식장으로 예약했다. 야외결혼식으로 준비하였지만 비가 잦은 영국 날씨를 대비해, 실내 홀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호텔이었다. 약혼 기간이 보통 1년 정도 되기에 미리 예약이 필요했다.

영어를 못하는 엄마와 한국어를 못하는 이안을 두고 외출했던 적이 있었다.

“장모님, 결혼식을 할 호텔을 예약했어요. 같이 보러 갈까요?”

“아이고 귀찮게 뭐 하러 놔둬”

예의상 거절을 그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왜 안 가고 싶으시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이안은 나에게 전화해서 왜 장모님이 우리가 결혼식 하는 호텔을 가고 싶어 하지 않은지 통역해 달라고 했다. 나는 거절하면 한 두 번 더 권하는 게 미덕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장모님과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궁합은 잘 맞았다. 어느 날, 엄마와 이안이 서로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걸 보았다. 엄마는 한국어로, 이안은 영어로, 옆에는 구글 번역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번역 덕에 반쯤은 알아듣고, 반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가끔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게 오히려 편할 때도 있다. 말보다 진심 어린 눈빛이 더 많은 걸 전하는 순간이 있다.

이안의 발음은 엉성하고, 엄마의 영어는 ‘오케이’뿐이지만, 그 사이엔 웃음이 있고 정이 있다. 진짜 가족이란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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