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은 책을 통해 ‘수영’, ‘학원’ 등의 단어를 배웠다. 책에 나오지 않는 단어는 밋업 그룹 친구인 술라에게 배운 ‘건배’와 ‘김치’였다. 술라는 민간 항공기 승무원으로,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각국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그녀는 각 나라의 한두 마디를 말할 줄 알았다.
그와 데이트를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엄마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엄마, 나 데이트해. 영국 남자랑.”
“이름은 뭔데?”
“이안.”
“영국 사람이 무슨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어? 성이 <이> 가야? 이름은 <안>이고?”
엄마의 창의력에 빵 터졌다.
“성은 샤드렉이야.”
“뭔 성이 그렇게 길어?”
마흔 살 되기 전에 사람을 만나라고 닦달하던 엄마는 내가 마흔을 넘기면서 두 손 두 발 들었다고 어느 날은 “에라, 혼자 늙도록 살아라!”라고 하시다가 “혼자 멋지게 살아”라고 악담과 조언을 번갈아 가며 하셨다. 최근에 그것도 포기하던 참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뭐 하는 사람인데?’였을 것이다. 이참에 결혼 날을 잡으려는 듯,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던 큰언니와 큰 형부에게, 영국부터 들르라고 지령을 내렸다.
이안은 처음 만나는 우리 가족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의 소형차를 끌고 공항에 픽업을 나갔다. 차가 작아서 짐이 안 들어갈 것 같다는 나의 우려에, 자기 차는 의자를 접으면 많이 들어간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공항에 도착해서 언니와 형부의 가방을 본 그는 패닉에 빠졌다. 여행 오는데 누가 이민 가방 2개, 기내용 가방 3개, 배낭 가방에 크로스백, 면세점 쇼핑 봉투까지 들고 올 거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짐만 싣고 우리는 택시를 타야 할 판이었다. 그야말로 차가 토할 만큼 짐도 꾸겨 넣고 사람도 꾸겨 넣어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후에 이안은 우리 가족과의 첫 만남에서 세 번 놀랐다고 했다. 첫 번째는 작은 사람들이 끌고 나오는 많은 짐에 놀랐고, 그 짐들이 다 먹을 거라는 데 놀랐으며, 특히 김치가 종류별로 나오는 것에 기겁했다고 했다. 그걸로 도착하자마자 요리를 바로 해서 먹는 것도 놀라웠다고 했다. ‘이 가족은 진기명기 (Britain's Got Talent)에 나오는 사람들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문제는 언니 내외가 한국을 떠난 후 발생했다. 언니랑 형부에게 런던 관광과 픽업 등 귀찮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도와준 이안이 고마워서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혼자 기다리던 게 지루했던 그가 요리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냉장고 문을 열었고, 갑자기 풍기는 낯선 냄새에 인상을 썼다.
“그게 김치야. 네가 그림으로만 봤던. 엄마 김치.”
나 역시 중국에 파견을 나갔을 때 낯선 음식 냄새를 견디기 힘들었던 적이 있어서 겸연쩍게 이야기했다.
“김치 꼭 먹어야 해?”
그가 무심한 척 물어보았다. 갑자기 김치를 먹을 때마다 미안해했던 독일 사람과 결혼한 한국 여자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이 말을 가볍게 넘기자니, 나도 김치를 먹을 때마다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될 것 같았다.
“김치는 나의 정체성이야. 이건 그냥 음식이 아니라고. 내가 너한테 피시 앤 칩스 꼭 먹어야 해?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할 거야? 김치 냄새가 싫으면 나랑 사귈 수 없어. 이쯤에서 그만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김치 이야기에서 무슨 헤어지는 이야기를 해? 내가 김치를 존중하면 되잖아.”
이안은 헤어지자는 이야기가 속상했는지 눈물을 글썽였다. 그 상황에 약간 당황했지만, 물러서면 안 된다는 생각에 헤어질 생각은 아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곰탱이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그 후 엄마는 이 서방을 위해 백김치를 담가주었고, ‘이 서방 김치’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사위가 되라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엄마는 결혼 전부터 이안을 이 서방이라 불렀다. 그는 김치의 중요성과 맛을 알아 버렸고, 몰래 숨겨두고 혼자 먹었다. 김치를 꺼내 먹는 모습이 개구쟁이 스머프를 잡아먹으러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가가멜의 걸음걸이 같아서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외국에서 산다고 해서 그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 이름을 지어 부르는 동양 사람을 보면 좀 서글퍼질 때도 있다. 부모님이 주신 좋은 이름 대신 상대가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바꾼다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일까? 우리의 것을 버리는 것이 외국에서 삶에 적응하는 방법이라면, 나는 그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적응하지 않은 채로 살고 싶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한국말을 버린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내가 김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을 이안에게 설명한 것처럼 말이다.
*김치사진은 찍어둔 게 없어서 운림가 김치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문제 되면 교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