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 좀 다락방에 처박아 줄래?

by 은주

“이런 개떡 같은 책은 도대체 어디서 산 거야?!”


이안은 내게 질문 할 때마다 어김없이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는 옆구리에 내가 꼴 보기 싫어하는 그 책을 끼고 다니며, 책의 목차 순서대로 내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일본을 싫어합니까?”

“당신은 수영을 못 합니까?”

“당신도 학원을 다녔습니까? 학원에서 밤 12시까지 공부했습니까?”

“당신도 버스가 오면 우르르 타십니까?”


내가 한국 사람의 대표라도 되는 냥 <한국인은>을 <당신은>으로 바꾸어 질문한다. 질문이 계속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화를 잘 이끌어 가고 싶은 그 나름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한국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그의 마음이 기특하기는 했다. 하지만, 골라도 왜 그런 책을 골랐는지 짜증이 났다.


당시에 영국의 국영방송 BBC도 주로 북한 뉴스를 다루었고, 한국 뉴스는 거의 나오지 않던 터라 정보가 없었을 것도 이해는 한다. 오래전에 발간된 책인 것을 감안하고도 질문의 대부분은 작가의 부정적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근거보다는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책이었고, 구구절절 나를 버럭 하게 만들었다.


“일본 사람 싫어하지 않아. 내가 일본인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너무 빈약한 근거에 다시 덧붙였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문제지. 사과하라는 우리의 정당한 항의가 왜 싫고 좋음의 문제여야 해?”

“버스를 우르르 타지 뭐, 샤부작 샤부작 타나?”

“나는 학원 안 다녔어.”

“수영 못 한다 어쩔래? 우리 언니들은 수영 다 잘해”


가끔 우기기까지 하며 일일이 반박하는 나를 보며 그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 정답인지 궁금하기보다는 내가 궁금한 듯했다. 어설픈 책을 사서 읽었지만 그전에 만난 역사 선생과 비교되었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한국에 관심이 없었던 A, 내가 궁금한 만큼 나의 나라가 궁금한 이안. 책의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작가는 미국 출신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부산에서 3년 정도 살았고, 그 기간이 힘들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에 연고가 있었으리라.


결혼 후 그 책을 그의 책장에서 발견했다. 제일 먼저 그 책을 다락방에 처박아두었다. 어이없게도 한국 여자를 사귀는 친구가 생기면 줄 거라고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누구 헤어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그 책 버리는 게 좋을 거야”효과 없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이제 나를 통해 한국을 배운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광주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을 배웠다. 매번 부재자 투표를 위해 런던을 나가는 나와 동행해 준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받은 권리를 존중해 준다.

한국인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외국인이 가득 찬 <기생충> 영화 관람에서도 옆사람에게 '내 아내의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소곤거린다.

도시보다 해남, 소매물도, 거제도 같은 소도시 여행을 좋아한다. 영국에서 왔다고 하면 신사의 나라에서 왔다고 젠틀맨이라고 표현해 주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기도 한다. 이안은 이제 책이 없어도 영화, 드라마, 여행을 통해 한국을 더 자세히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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