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라는 과목

오답노트를 써보았습니다.

by 카후나

남편이라는 과목의 오답노트를 써보았습니다.

한 남자와 평생 살 수 있을까?


내 인생 질문 중 하나다. 내가 평범한 결혼생활이 가능한 사람인가 오랫동안 궁금했다. 40대가 되어 이제 나에 대해 전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인정하고 있다. 전에도 잘 알고 있긴 했다.) 나는 양보심과 인내심이 현저히 부족하고 인생에 새로움이 산소처럼 꾸준히 공급되어야 무기력해지지 않고 살 수 있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과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결혼생활에 만족감을 느끼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런 내가 2020년 9월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 이 고민을 꾸준히 남편과 공유했다. 내가 얼마나 같이 살기에 힘들고 피곤할 수 있는지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부모님도 남편과의 첫 만남에서 첫 질문이 우리 딸이 성격이 많이 강하다 혹시 알고 있는지였다. 부모님도 내가 평범한 결혼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구나 하고 알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첫 만남에 대놓고 물어볼 일인가 싶어 저녁 먹는 내내 입을 삐죽거렸다.


남편은 모험심이 많은 사람인지 이렇게 아내로서 위험요소가 많은 나와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겠다고 했다. 어차피 걱정만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고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을 터이다. 이 인생 질문에 대해 걱정만 할 것이 아니고 저질러 보는 편이 좋겠다 싶어, 일사불란하게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결혼하고 나니 뭘 한 건가 싶은 아침이 몇 주 있었는데, 어차피 맨 정신에 할 수 있는 게 결혼은 아니라고 많은 결혼 선배들이 말해주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남편의 일과 코로나 상황 때문에 결국 2021년 초부터 함께 살았다. 결혼 후에도 6개월이나 떨어져 살아서 인지 한 달 정도는 갈등도 없고 그냥 같이 있는 것이 좋았다. 아침에 산책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음이 찰랑거렸다.


그러다 3월에 남편이 한국어 학원에 가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독일인이고 우리는 한국에 살 계획이다.) 전형적인 이 한국식 한국어 학원은 빠른 진도와 단어 암기, 매일 시험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학원의 전력질주형 학습법을 맛 본 남편은 일주일 만에 이건 바보짓이라며 이건 교육이 아니라 고문이라고 못 가겠다고 했다. 나는 실망했다며 그야말로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내가 달리는 차에서 내려달라고 소리 지를 만큼 화가 났던 적이 있고 눈도 못 쳐다보고 며칠을 사는 지독한 날들도 있었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했는데 싸우다 정이 뚝뚝 떨어져서 큰 일이구나 싶었다.


이번 결혼은 정말 실패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이전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 결혼을 남편의 이해심에만 기댈 수만은 없고 나도 나만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막막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생각해보면 전적으로 내가 인고의 노력으로 나 스스로를 개조해야 할 것 같고, 또 어느 날은 남편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 것 같다. 잘 지내다가도 우리가 너무 무리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심이 늘어갔다.

30대 초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다. 아버지를 주적으로 생각할 만큼 골이 깊은 부녀였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할 일이 분명했기에 합류했다. 첫 1년 동안 매일 ‘내일 그만둬야지’ 다짐하고 퇴근했다. 그동안 아버지와의 갈등 중 세 번은 정말 기록적이었는데, 회사에서 참지 못하고 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지른 것이다. (정말 부끄러워서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진다.) 정말 사적인 성격에, 누구에게도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서 일기장에 몇 장에 걸쳐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써놓았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읽어 보니 결국 한 가지 이유에서 일어난 갈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TMI지만, 결국 내가 아버지를 존중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 마음을 마주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화를 낸 것이다.)


같은 이유로 매번 다투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 경험에서라도 배워야지. 그래서 이 마음을 고쳐먹었고 신기하게도 그 이후 7년 동안 그런 심각한 갈등은 없었다. 큰 싸움이 없는 목표지향적 부녀는 이후 나름 좋은 팀이 되어 성과도 내고 나는 출근이 기다려질 만큼 즐겁게 일했다. (물론, 몇 번 더 퇴사를 고민한 적은 있지만)


이 경험에서 힌트를 얻어 싸우는 노트를 써봤다. 모르는 문제를 틀리는 것은 몰라도, 틀렸던 문제를 또 틀리고 싶지 않다. 수능 볼 때 쓰던 오답노트처럼 틀린 문제를 쓰고 이후에 반복해서 틀리는 것을 막고 싶었다. 일단 쓰기 시작하니, 동기를 가지고 뭔가를 쓰는 것만으로 일단 안심이 되었다. ‘나도 나만의 노력을 하고 있어.’ ‘이걸 쓰면 뭔가 지혜로운 버전의 내가 나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류의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결혼도, 어떤 관계도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역시 생각이 짧았다. 일단, 기록 자체가 어렵긴 하다. 싸움 노트는 너무 휘갈겨서 읽기도 어렵고, 감정이 고조되어있을 때 쓰니 논리적으로 작성 자체가 어렵다. 그렇다고 핸드폰 메모장 등 디지털로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A6 메모카드 한 장에 한 면에는 싸운 이야기를 최대한 상세히 적고 반대편에 내가 해볼 만한 노력에 대해 썼다. 두 번째로 어려운 점은 나중으로 미루었던 싸움 기록은 이상하게 기억에서 증발되어서 나중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에게도 물어봤는데 똑같다.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이러니 오랫동안 같이 살 수 있는 것일까? 망각으로? 세 번째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쓴다고 해도 내 입장만 쓰게 된다.


이렇게 써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결혼을 구할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망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쓰긴 썼다.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뭔가 패턴이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또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나 보다. 유레카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패턴이 없다고 할 정도로 패턴이 너무 많다. 이것을 모두 생각하고 살다가는 내가 지쳐버릴 것이다. 매일이 피곤한 일상인데 편안함을 찾아야 할 가정에서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싶었다. 아이고.

지난 주말 저녁. 또 저녁을 많이 먹고 한남대교에서 동호대교 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요새는 왜 잔소리를 안 해?”

“요즘은 우리가 덜 싸우잖아.”


나는 좀 얼떨떨했고 “잘 모르겠네.”라고 답했지만 아마도 오답노트를 쓰는 그 노력 자체로 무언가 효과가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내가 다르게 한 것이 없다. (남편이 노력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다. 끄응.) 정말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핏대 올리고 싸운 것이 벌써 두 달 전이다. 아니면 오답노트를 쓰고 나서 싸우지 말자는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어찌하든 몇 달 전만 해도 말 안 하고 며칠이 지나는 날이 많았던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은 참 고무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어두운 시기마다 빛을 내어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서 이런 글귀가 나온다.


사랑은 돌멩이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빵처럼 매일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거래.

크게 공감하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 적어놓았다. 오늘의 노력을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뭔가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돌멩이처럼 변치 않는 사랑은 아니어도, 커피 10잔을 적립하면 주는 무료 한 잔처럼, 그런 것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정말 열심히 할 것 같은데. 매일매일 새롭게 빵을 구울 생각을 하니 슬슬 불안해진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분명히 얼마 안 가서 지치겠지.’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빵도 처음부터는 잘 만들 수는 없겠지. 나에게도 좀 시간을 주자. 노력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생각하고 오답노트를 한번 열심히 써보자. 좋은 것은 원래 나중에 온다고 했으니까.


1차원적인 저는 또 빵을 만들어 봤는데 역시 잘 안되더군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