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영역

남편이라는 과목 오답노트

by 카후나

중요도: 매우 높음

복습: 일주일에 두 번은 해야 함

잔소리를 정말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너나 잘하세요’가 바로 튀어나오는 반항심이 있다. 그런데 결혼 후 내 모습을 보면서 놀랐다. 내가 이렇게 잔소리를 많이 하다니. 청개구리 같은 마음은 늙지도 않아서 아직도 하라는 것의 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왜 남편 일에는 뭐든 나서서 랩을 하듯 딕션 좋게 따발총으로 잔소리를 하는 것인가. 남편은 18살 때부터 혼자 살았고 한 번도 누구와 함께 살아 본 적이 없다. 또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게도 시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반면, 나의 부모님 두 분 모두 잔소리 장인이신데 아주 큰 일부터 아주 작은 일까지 한 톨의 아낌이 없이 의견을 나눠 주신다. 평생 잔소리라면 누구보다 많이 들어보아 나도 알고 있다. 잔소리의 유해함과 효과 없음을. 남편이 특히 예민하게 생각하는 영역이라서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같은 잔소리를 3-4번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복습이 필요하다. 임경선 작가님의 <평범한 결혼생활>에서의 글귀가 떠오른다.


결혼생활을 가급적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나는 서로의 '안 맞음'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초연해하며, 그것이 일으킬 갈등의 가능성을 피하려는 훈련을 본능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결혼생활은 분명 일종의 인격 수양이라 할 수가 있겠다.’


그렇구나. 결혼생활은 인격 수양 활동이구나.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었어. 자연스러운 거야.


#1. 차도에서의 잔소리


남편이 가장 가장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운전할 때 하는 잔소리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에 10번 중 7번은 차 안에서 운전 잔소리 때문이다. 이 영역에 관해서는 여러 일화가 있지만 감정이 제일 좋지 않았던 것은 이때였나 보다.


싸움 기록(2021-08-09): 지난여름.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 같은 더운 날이었다. 남편은 운전 중이었고 (나는 조수석) 우리는 한남오거리에서 유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갑자기 움직여서,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했다.

내용과 무관/가로수의 정렬이 너무 단정해서 찍었다.

나: “아, 그냥 끼워주지. 그러다 사고 날 것 같은데.”

잭: “….” (남편 안색이 확 바뀐다.)

나: “근데 지금 그것 가지고 화난 거야?”

잭: “제발 제발 운전할 때 아무 말도 하지 마 정말 싫어.” (진짜 싫은 말투다.)

정말 참다 참다 한마디 했는데 이럴 수가. 너무 억울하고 내 노력은 무엇인가 싶고 가슴이 미치도록 답답해졌다.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사는 것 같아서 이보다 더 답답할 수가 없다. 더 이상 같은 공간에 있으면 확 터져버릴 것 같다. 유턴하자마자 문을 열고 내려버렸다. 남편은 멍하니 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혼자 집으로 가고 나도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온 남편은 혼자 바람을 좀 쐐야겠다고 나가서 두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나름의 노력: 남편도 이 영역에서는 너무 과민하다. 그런데 이 영역은 남편이 바뀔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서울에서 운전경력이 20년이다. 어느 차선으로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 가면 막혀서 어느 동네 샛길로 가야 하는지 잘 안다. (택시 기사님들의 샛길도 외우고 있다.) K-효율 추구 성향인 나는 이 점을 포기하기가 정말 힘들다. 일단 운전경로나 주행 차선이 보이면 잔소리가 튀어나오니 시야를 가려야 한다. 일단 옆자리 말고 뒷자리에 앉는다. 훨씬 덜 보이고 꽤 편하다. 뭔가 기사님이 운전하는 차에 탄 것처럼 기분도 살짝 좋아진다. 하지만 여기 앉아도 보인다. 내가 찾은 방법은 차라리 책을 읽는 것이다. 뒷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훨씬 덜 싸우고 있다. 효과 만점이다. (내가 운전할 때는 남편이 뒷 좌석에 앉는다.)

다행히 생각보다 앞 차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2 여러 사람 앞에서 잔소리


인내심으로는 북반구에서 상위 10% 안에는 들 것 같은 남편이 폭발 직전까지 가는 상황은 바로 남들과 함께 있을 때 하는 잔소리이다.


싸움 기록 (21-11-22): 이맘때 독일 날씨처럼 뼛속까지 비바람이 들어올 것 같은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오늘부터 동생이 하는 카페에서 남편이 하루에 몇 시간씩 도와주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실전에서 남편 한국어 연습도 하고 동생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나는 준비를 위해 며칠 전 카페에서 일할 때 필요한 한국어 문장을 준비해서 남편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당연히 그 문장을 다 암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남편은 외우지 않았고 당일 카페에서 남편은 주문을 하나도 받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보고 나는 당황했고 실망했다. 남편에게 바로 “왜 준비하지 않았어? 여기 다 쓰여있는데.”라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했고 남편은 갑자기 표정이 굳더니 자리를 피했다. 내가 있으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바로 집으로 왔다. 남편이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절대 남들 앞에서 본인에게 잔소리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애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정말 화가 났다고. 일하는 것은 모두 숙지했고 동생이 잘 알려주어서 바로 잘할 수 있었다고. 서로 이 일은 며칠이고 마음에 남아 서먹한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마음이 풀어졌다.

동생네 카페는 바나나브레드가 제일 맛있다.

나름의 노력: 남편이 분명하게 요청을 했기에 이 점은 그날 바로 마음에 새겼다. 이렇게 정확한 요청이 오면 가장 좋다. 답을 아는 문제니 실천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지. 이후에도 가슴이 터지게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씩씩거리며 일기장에 답답한 마음만 손이 아프게 눌러 적었다.


#3. 분리수거 잔소리


분리수거를 당연히 잘하겠지 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한 번 안내를 하고 제대로 하기를 기대했다. (사실, 충분히 체계적으로 잘 설명했는데!)


싸움 노트(21-05-10): 일찍 일어난 아침이었다. 청소를 좀 해볼까 하고 분리수거 박스를 열었다. 플라스틱 박스에 잔뜩 들어있는 비닐을 보고 기분이 상했다. 아니 대체 왜? 일단 처리를 해야 하니 모두 다 꺼내서 분리수거를 해서 버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지를 속으로 되뇌며 3-4개월을 보냈다. 그간 기회를 봐서 비닐과 플라스틱을 분리해달라 남편에게 몇 번 민원을 넣었다. 그러다 또 비닐을 플라스틱 박스에 버리는 그를 봐 버렸다. 참아왔던 것이 터졌다. “도대체 너는 왜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왜 그런 것이냐.” 갑자기 폭격하는 나를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는 남편이다. 남편의 주장은 비닐과 플라스틱은 같은 원료로 만들어진 것인데 왜 분리하냐는 것이었다. 분은 안 풀렸지만,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둘이 사니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새해부터는 플라스틱 포함 쓰레기 줄이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


나름의 노력: 분리수거를 아예 남편 책임으로 집안일 실명제를 하고 있다. 서로 구역을 나누어야 갈등이 줄어든다. (이 점에서 동물들이 현명하다. 각자 구역을 존중하고 사는 지혜가 있지 않은가.) 요리는 내가 하고 설거지는 잭*이하는 식이다. 서로 고마운 마음이 드는 구조이고 서로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그렇다고 잔소리를 영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필요하기도 하고 서로 진정 염려되어 사랑으로 주고받는 잔소리도 많다. 잔소리의 마음이 어떤 진심인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남편이 힘들어 한 나의 잔소리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바꾸려고 애처럼 대하는 마음의 잔소리였다. 생각해 보니 그런 마음이 정말 있다. 한국어를 못하는 남편은 은행에 가도, 병원에 가도, 주민센터에 가도 내가 도와줘야 업무처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챙겨야 하는 존재’로 더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독일에 살았다면 남편은 불평 없이 나를 도와주었을 것이다.


잔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를 믿어주지 않아서 잔소리가 먼저 나갔다. 내 조급증 때문에 남편을 채근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먼저 그를 믿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수희 작가님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에서 봤던 글귀가 생각난다. 작가님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쓴 글인데 남편을 애처럼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서 이런 글귀가 생각나는 것은 또 뭔가 싶다.

머리로 키우지 말자. 마음으로 키우자. 한 번의 말로, 한 번의 실수로 망가지는 인생은 없다. 그런 것으로 망가져버린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운명의 관대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믿어주어야 한다 남편을. 그러나 아직은 머리로 믿기가 힘들다. 작가님 말대로 나도 마음으로 믿어보자. 그리고 운명의 관대함에 좀 기대 봐야겠다.


*실명이 아닙니다. 남편 몰래 쓰고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쓰고 있는데 본인 이야기를 쓰는지 모르니 남편도 모르는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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