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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된 감상기: 셀프 인터뷰

감응의 글쓰기 25기 - 3차시 과제

by 카후나

새벽 두 시. 옆방에서 자던 두 살배기 딸이 아아아앙 울며 나(엄마)를 찾는다. 다시 딸 침대로 들어가 아이 옆에 누워 티셔츠를 목까지 올렸다. 하나가 작은 손으로 내 양쪽 젖꼭지를 라디오 주파수 맞추듯 왼쪽 오른쪽으로 스무 번쯤 돌리더니, 곧 안정을 찾고 잠들었다. 피곤한데 나도 같이 옆에 누워 잘까 했지만, 조심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감응의 글쓰기 수업 열 문장도 올려야 하고, 무엇보다 에세이를 써야 한다.


지난 수업에서 나혜석의 <모된감상기>를 보기 전까지 엄마가 된 내 경험을 글감으로 생각해보질 못했다.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게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다들 하는 건데, 이렇게만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지난 2년이 나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더 늦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어 책상에 앉았다.




기대와 달랐던 것들은 무엇인가? 예상을 벗어났던 것은?


엄마가 되면 내 안에서 새로운 자아가 나올 줄 알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헌신적이고 너그러운 사람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되고 가장 놀란 것은 내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했다고 내가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여전히 나다. 딸이 태어나면 엄마 아닌 내 모습이 많이 없어질 거라 예상했다. 그냥 ‘아줌마’가 돼버리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 점진적으로 그쪽으로 가는 중일 지도 모르지만, 2년간을 돌아보면 나는 충분히 하나 엄마이면서 카후나이다.


두 번째로 기대와 달랐던 것은 육아 업무 강도와 범위다. 분명 육체노동이 대부분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감정노동이 상당하다. 딸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마다 오직 나에게 와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데, 몇 시간이고 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혼자 두고 밖에 나갈까, 굶길까, 때릴까 하는 충동을 느낄 정도로 정신적인 한계를 경험한다. 노동 강도로 칠 것 같으면, 30대 초반 아침 7시 출근 새벽 3시 퇴근을 했을 때보다 업무 강도가 훨씬 더 센 느낌이다. 실행력 말고 기획력도 요구하는 노동인데, 치열하게 아이를 관찰해서 먹이고, 재우고, 노는 활동을 조정하는 일의 계획과 실행을 모두 해야 한다. 나도 이런 노동으로 나로 자랐다고 상상하니 황송한 기분이 들 정도다.


나는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러고 있는 것도 있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아이 사진은 안 올릴 줄 알았다. 근데 고민할 새도 없이 애가 태어나 처음 하나 사진이 생긴 순간 바꿨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하나가 내 젖꼭지를 만지면 즉시 안심하며 잠들 수 있는 것처럼, 나도 하나 사진을 보면 급속 충전되기 때문에.

돌잔치, 돌기념 스튜디오 촬영 이런 건 정말 안 할 줄 알았다. 집에서 미역국 끓여서 소박하게 생일상 차려야지 싶었지만, 세 식구 한복 스튜디오 촬영, 직계가족 모시고 돌잔치, 친척까지 70명이 모여 돌잔치까지 했다. 사진 촬영날 내 헤어메이크업을 해주겠다고 전문가 선생님이 집에 와서 메이크업을 받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싶나 보다.


4년을 기다려 만난 딸이라 매 순간 함께 있는 것 자체로 기쁠 거라고 생각했다. 지칠 때마다 ‘내가 너를 만나려고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라는 마음이 마법이 되어 헬육아가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귀하게’ 얻은 딸 약발은 돌잔치 이후로 거의 사라졌다.


아이를 낳고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그렇겠구나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방해꾼(딸)의 등장으로 방해받는 모든 일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다. 아침 수영을 가려고 가방을 챙기면 하나가 울면서 매달리는데, 아빠에게 맡기고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조용한 밤에 책을 읽고 있으면 하나가 운다. 오늘처럼 재우고 나와 또 읽고 다른 책도 꺼낸다. 방해받는 것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어쩌면 엄마로의 일상이 너무 비중이 커서 다른 활동을 늘리고 싶은 균형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가고 싶은 에너지로 엄마가 된 이후 창업도 하고, 수영대회도 나가고, 글쓰기/읽기도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엄마가 되고 변한 것은 뭐가 있을까?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 며칠 전 아이 옆에 자다가 천둥소리에 일어났다. 안방에 가니 남편이 없다. 창밖을 보니 가을비가 여름 장맛비 소리를 내며 내리고 있는데 천둥이 쾅쾅 두 번 더 친다. 이 밤에 어딜 갔을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엄마가 된 이후로 불길하다는 느낌이 더 자주 든다.


보지도 않던 <그것이 알고 싶다>도 열심히 보기 시작했는데,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과 연결된 것 같다. 방송에 나오는 불의와 범죄를 알아가며 혹시 내 아이가 그런 일을 겪진 않을지, 아니면 내가 그런 일을 겪지는 않을지 두려운 마음에 이전 영상까지 찾아보게 된다.


선물처럼 찾아온 기분 좋은 변화도 있다. (유치하지만) 엄마가 남동생만 사랑한다는 원망이 있었는데, 엄마가 되는 경험을 하고 한스럽던 감정이 풀렸다. 첫째로 자란다는 의미는 부모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 몸으로 실감했다. 나도 엄마에게 이런 존재였구나. 엄마가 동생을 더 사랑해도 이제 괜찮다.


예전에 비해 이웃과 교류가 압도적으로 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폰만 봤는데, 이제는 "하나야 안녕하세요. 인사해야지"라고 하며 나도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애들이 안 보이는 사회라고 하는데, 동네 아이들은 동선과 시간대가 비슷해서 내 눈에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이웃과의 교류가 독일인 남편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남편은 두세 달에 한 번씩 '한국 다 싫어-독일 갔다 올게 병'에 걸리는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1년에 한 번 정도로 빈도가 줄었다. 곁에서 관찰한 결과 이 변화의 큰 이유를 이웃과의 교류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를 통해 만난 하은이네, 태호네, 혁우네, 동화네, 알렉스네 엄마, 아빠 나누는 작은 대화만으로도 서울에서 사는 게 좋아진 것 같다.


앞으로 엄마로 살면서 계속 떠올리면 좋은 것들은 뭐가 있을까?


확실히 아이는 중력이 세다. 산 날보다 살 날이 적은 44세 엄마는 딸이 처음 말하는 단어를 들을 때, 안 하던 표정을 지을 때, 안 먹던 음식을 먹을 때 도파민이 폭발한다. 나는 노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딸내미는 이런 성장 모먼트를 지날 때에 기쁨이 샘솟는다. 이런 보통의 기쁨을 음미하며 또 하루가 흐른다. 한 것은 하나도 없이 하루가 끝났다. 정확하게 내 욕구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이라는 중력이 엄청난 항성 주변을 도는 행성이 돼버릴 것 같다.



요즘은 하나가 자고 일어나면, 옆에 누워 자는 나를 보며 "마마"라고 한다. 또래보다 말이 느린 아이가 매주 한두 단어씩 말을 늘려가고 있다. 언어의 세계로 들어선 딸을 보며, 우리는 앞으로 어떤 대화를 나눌지 궁금해진다. 나는 어떤 말을 하는 엄마가 될까? 아이가 하는 말 중에 오래도록 기억할 말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들을 품고 지내다 매년 연말 다시 모된감상기를 업데이트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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