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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망명 정부 화폐 같은 낙엽을 선물로 받았다

감응의 글쓰기 25기 - 3차시 수업 후기

by 카후나

1. <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은 사소하지 않다> 책 읽고 나누기


- 솔직히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해도, 피해도.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점점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고 수치심을 느꼈다. 바로 코앞에 있는데, 매일 마주하고 있는데, 심지어 내 안에도 있는데 말이다. 왜 못 보냐? 외국인 남편이 서울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외국인 차별’, 한국애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놀이터만 가면 다른 아이들이 hello라고 인사하는 내 딸의 인종성, 그리고 <마이너 필링스> 26페이지에서 말하는 ‘인종적 자기혐오’라는 개념을 비로소 마주한 내 모습까지(나는 나도 차별한다!!) 이 책에서 언젠가 글로 써보며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주제를 만났다.


- 차별에 대한 주제로 남편과 대화하면서 인종 말고 자연스럽게 나이 차별, 경제 계급 차별, 외모 차별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했는데, 이것도 앞으로 자세히 보며 생각을 모아봐야겠다.


2. 합평 시간에 다 못한 이야기


완주의 <별난 이웃과 고함>

이런 경험을 글로 쓰며 완주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궁금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써볼까 싶다가도 다시 그 상황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 꺼리게 되는데 말이다. 글로 쓰고 나서 좀 나아졌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또 못 물어봤다.


너영의 <눈총, 눈초리>

그날 급식실에서 회초리보다 더 아픈 눈초리를 받은 고3의 너영이 이 글을 쓰고 조금 더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너영이 쓸 글이 무척 기대되고, 나도 '고구마 샐러드'같은 나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명사를 글에 잘 쓰고 싶다.


리버의 <소음과 거울>

내가 리버에게 어떤 문장은 어렵다고 했는데, 질투였던 것 같다. 집에 와서 다시 읽어보니 나도 이렇게 지성을 지니고 글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리버의 고유함이 담긴 글을 많이 읽고 싶다. 닮고 싶은 점이 많으니까.


3. 잊지 않고 싶은 은유샘의 말

(제가 듣고 싶은 대로 들어 오해한 것이 있을 수 있어요.)


마이어 필링스 책에 대해

- 눌러왔던 감정이 올라오는 글이죠.

- 형식이 좀 특이하죠? 모듈형 글쓰기라고도 불러요.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쓰는 글의 형식이죠.

- 형식이 다르면 내용도 다르게 보이죠. 그렇다고 내용 없이 형식 실험만 하면 독자에게 외면당하죠. 독자를 머물게 해주는 장치 역할을 해야죠.


합평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부분의 비중과 그렇지 않은 곳의 비중을 비교해서 조절해야 해요. 글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심도 있게 하는 것이니, 그 부분에 비중을 더 크게 두는 것이 좋아요.

- 퇴고할 때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를 생각해 봐요.

- 가끔 글을 쓰다 보면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가는 경우가 있어요.

- 처음과 끝만 다시 읽어보고 호응이 되는지 살펴요. 그러면 완결성이 생겨요.

- 단문 vs 장문, 무조건 더 좋은 것은 없어요. 강조하고 싶은 건 끊어서 단문으로 하면 좋고요,한 가지를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면 2-3개 단문을 한 개의 장문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아요.

- 글에 인물을 등장시키면 목소리를, 비중을 줘야 해요.

- 과거를 회상하는 글의 경우, 시점을 정확하게 해 줘요.이게 지금 생각인지 그때 생각인지 독자가 혼란스러울 수 있거근요.

- 글 전체의 주어가 '나'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세상이'로 주어가 변경되면 책임질 수 없는 문장이 될 수 있죠. 내가 책임지고 논증할 수 있는 것만 글에 담아요.

- 계속 깊이 생각하다 보면 멋진 문장을 만나는 것이지, 멋진 문장을 쓰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죠.

- 내 경험을 내 언어로 말할 수/쓸 수 있어야 내 경험의 주인이 되는 거죠. 나혜석이 <이혼고백장>을 쓰지 않았다면, 당사자의 이야기 없이 왜곡되었을 거예요.

- 글쓰기는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해야 해요. 글쓰기가 어떤 목적이 되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가져오는 마음으로 소박하고 솔직하게 쓰면 돼요.

- 잘 쓴 글을 끝까지 읽히는 글. 예상에서 빗나가는 글은 끝까지 읽게 돼요. 엎치락뒤치락하는 글이어서 재밌었어요.

- 어설픈 타협은 글을 망하게 해요.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잘 쓴 글. 내가 나다울 수 있는 배짱을 가져요. 내가 독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합평하면서: 생각해 볼 것들

- 화내야 할 상황에 우리가 소리치는 걸 안 해봐서 못하는데요. 비명처럼 소리치는 것도 필요해요. 그다음에 수습하더라도요.

- 세상을 살면서 나를 얼마나 내어줄 것인가도 생각해 봐야 해요. 욕망과 소비의 규모를 구체화해 봐요. 필요해요.


수업 전에

- 선유도에는 꼭 일 년에 두 번은 가면 좋더라고요. 봄, 가을예요. 부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 수업에 오기 전에 선유도에 갔었는데, 학인들에게 주려고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같은 낙엽을 챙겨 왔어요.

+


추일 서정(秋日抒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기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인문 평론>, 194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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