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월의 밑줄 (1/3)

황정은을 읽으며

by 카후나

02월 02일 월요일 기록


식탁보, 노란색!

그리고 신선한 흰 종이!

단어들이 올 것이다

천이 좋으니

종이가 섬세하니!

피오르에 얼음이 얼면

새들이 날아와 앉지

_ 울라브 하우게, <새 식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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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03일 화요일 기록


물리적으로도 고립시키고, 폭력이라는 틀을 씌운다. 수단으로써 그것은 철저하고도 완전한 발견이었을 거야. 물리적 봉쇄와 이념적 봉쇄, 운동과 일상의 격리. 말하자면 일상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의... 박리. 뭐가 됐든 차벽이 그것을 완성시킬 것이다. 차벽은 말이지 차벽은... 벽으로써 시위 관리에 동원되지만 시위대가 그것에 손을 대고 흔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는 벽이 아니고 재산이되잖아. 국가의 재산. 시위대의 움직임은 가로막힌 길을 뚫는 돌파 행위가 아니고 재산 손괴 행위가 된다. 관리자들이 행복해진다. 관리가 쉬워지니까.


_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디디의 우산>,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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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04일 수요일 기록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글에서 "아이히만에게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한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는 김학이 선생이 지적했던 것처럼 '평범성'보다는 '상투성'에 가까운 말인 듯하다.


_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디디의 우산>,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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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05일 목요일 기록


일상에서 내 기도의 내용은 서수경의 귀가이다. 서수경이 매일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저 바깥에서, 매일의 죽음에서 돌아온다. (...) 우리가 무슨 관계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마중 가는 사람, 20년째 서로의 귀가를 열렬히 반기는 사람, 나머지 한 사람이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을 매일 상상하는 사람, 서로의 죽음을 가장 근거리에서 감당하기로 약속한 사람.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묻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에게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친구'나 '친척'이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가장 간단하고 간편하기 때문은 아니고 그것이 우리 이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_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257,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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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08일 일요일 기록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뭘까? 그것은 생각일까?

(...)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 얼마나 자주 생각을...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 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상식이지, 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와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으며 내가 주장하는 상식으로 네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정조차 하질 않잖아. 그럴 때의 상식이란 감도 생각도 아니고...그저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고 저 이야기는 저렇게 끝나는 것이라는 관습적 판단일 뿐 아닐까.


_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디디의 우산>, 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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