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후나 Dec 02. 2022

나는 어쩌다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나는 어쩌다 읽는 사람이 되었을까?


작년부터 한 달에 5권씩 읽고 있다. 아침마다 50페이지씩만 읽었을 뿐인데 이게 쌓이니 일 년에 60권, 2년이 지나니 120권이 되었다.

(왼쪽: 21년 독서기록 - 상반기 30권, 하반기 35권을 읽었다. 오른쪽: 22년 기록 - 현재 55권째를 읽고 있다. 75권을 읽겠다는 올초의 야심이 무색하다.)

그런데 나는 본래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점에 가도 책은 보는 척만 하고 문구만 잔뜩 샀다. 책을 읽는 일은 너무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나에게 집중력은 일에 쓰기에도 한참 부족했다. 콘텐츠는 나의 복잡한 마음을 풀어주는 기능이 가장 중요했는데 그래서 2018년까지는 주로 미드나 예능 프로그램 등 영상매체를 매일 한 두시간은 꼭 봐야하는 중독자였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 나는 어쩌다 매월 책을 10만 원씩 사는 사람이 되었나?

- 어쩌다 가방 안에 지갑은 없어도 책 한 권과 밑줄 칠 연필은 있는 사람이 되었나?

- 신간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럴까?


도대체 어떻게 읽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독서 기록이 있으니 무슨 책을 읽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해보았다.


1. 모르는 분야에 대한 열망으로 읽기 시작했다.

19년 초부터 바짝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책 매체에 대한 호감이라기 보다 모르는 분야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것을 해결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심리학, 뇌과학, 화학, 진화생물학, 미래학, 투자분석 같은 이성적인 책을 주로 읽었다. <총, 균, 쇠>, <부의 지각변동>, <초예측>, <화학이란 무엇인가>, <데이터 읽기의 기술>, <지혜의 심리학>, <60분 만에 읽었지만 평생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아이디어 생산법>, <Start with WHY>, <감정수업> 같은 책이었다.


모르는 분야를 더 알고 싶어 서점에 자주 가면서도 내가 전혀 가지 않는 코너도 있었는데, 소설 구역이었다. 이야기는 텍스트보다 영상으로 접하는 게 더 익숙했던 나는 소설은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열등감이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소설 한 권 읽지 않고 상반기를 보낸 사람이 되고싶지 않아서 한 권 산 것이 <백년의 고독 1>이었다.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내 인생의 관계 속에서 더 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말에 더 공감하게 되었고, 대화 밖의 이야기하지 않는 이야기가 들리는 실감을 한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이어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밥도 안 먹고) 한 자리에서 읽을 수 밖에 없는 강렬한 읽기 경험을 하기도 했다.


2. 같이 읽으면서 더 읽게 되었다.

이렇게 사부작사부작 혼자 읽기 시작하던 시기에 오랜만에 직장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읽는 여자고, 심지어 쓰는 여자다. 그녀에게 나의 보잘것없는 독서 경험을 아야기했더니, 그녀는 그녀의 풍부한 읽는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그러면서 같이 읽은 책에 대해 책 수다를 떨고, 그녀가 나에게 몇 권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물론 나는 추천해주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추천해주는 책뿐만 아니라 추천해주는 모든 것에 거부감이 있는 나를 나도 이해를 못 하겠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 읽은 책에 대해 수다를 떨며 수다 중 최고봉은 책 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수다를 떨며 그녀가 즐겁게 읽은 책이 장바구니로 한 권씩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한 권씩 읽으며 살금살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독서 취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여름부터 밑미에서 하는 문장메모 리추얼을 하며 더욱 본격적으로 읽었다. 물론 책은 혼자 읽는 것이지만 읽은 문장을 서로 나누며 함께 읽는 것 같은 격려와 응원이 있어 더 즐거운 읽기를 하고 있다. 세상에는 말도 못하게 다양한 생각과 책이 있지만 나는 내 취향의 것만 읽고 또 읽게 되는데, 리추얼을 하며 매일 다양한 책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읽는 세계가 조금 넓어졌다. (제가 심지어 시를 읽습니다. 무려 아침마다 시를 필사합니다. 저 스스로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밑미에서 하는 리추얼입니다. 매일 한 문장을 적어 서로 공유합니다. 적은 문장은 하루 종일 동행하며 음미하거나 다짐이라면 다시 뇌에 세뇌하는 과정을 가집니다.


3. 점점 텍스트에 대한 애정이 커진다.

https://www.thestartupbible.com/ 스타트업투자자 배기홍씨의 블로그인데 직접 경험한 것을 꾸미지 않고 직설적으로 쓰는 그의 이야기가 10년째 지겹지가 않다.

10년 넘게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가 있다. 지독하게 변덕스러운 내가 무언가를 10년간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기적이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배기홍씨의 글인데 어제 아침에 그의 뉴스레터를 보며 또 공감하게 되었다.

콘텐츠의 최고봉은 텍스트

4년 전만 해도 일년에 책 한 두 권 밖에 읽지 않았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니 참 같잖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 말에 극공감한다.


일단 텍스트 콘텐츠는 지겨워지지가 않는다. 아무리 파도 더 파들어갈 곳이 무수히 많고 넓다. 40대가 되어서라도 읽는 재미에 빠져서 다행이고 읽는 나에게 너무나 고맙다. 또 내가 모르는 세상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텍스트는 불순물이 적은 콘텐츠라고 해야할까? 같은 작가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해주는 강연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말투나 옷 차림새, 그리고 다양한 편견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온전히 배제되고 아주 공정하게 내용만 남는다.


얼마 전에 읽은 책 <행복이 거기 있다,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이>에서 정지우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주어가 아니라 동사다.

나의 동사 중에 ‘읽는다‘ 동사도 좀 챙겨보자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아직은 읽은 책이 너무 적은 책린이이지만, 읽는다는 동사를 계속 하고 싶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잔뜩, 그것도 깊히 만날 수 있는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을 앞으로 차곡차곡 기록해보려고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